후암동 케이크 맛집을 소개합니다
이태원동에서 후암동으로 이사 온 지 1달 차. 날씨가 포근했던 지난 토요일은 케이크 투어를 하는 것으로 집 근처를 샅샅이 산책하며 동네 신고식을 했다. 수많은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네이버 빵소담 카페 후기 등을 참고해서 후암동 케이크 집 다섯 군데를 선별했다. 매장의 분위기와 케이크의 맛을 상세히 적어 보겠다.
후암동 404-37
후암 종점이라 불리는 삼거리 안쪽 골목에 위치한 카페다. 테이블 개수보다 빵 종류가 더 많은 아담한 카페로, 채광 좋은 자리에 앉아 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 가기 좋은 곳이다. 엽서나 화분, 잡지 등으로 알차게 꾸며 놓은 매장 곳곳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겨울이니만큼 딸기 케이크, 딸기 타르트가 맛있어 보였지만 평소 먹어 본 적 없는 단호박 타르트를 포장했다. 에그타르트와 휘낭시에, 쿠키, 스콘 등 구움 과자류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다. 다음번에 방문했을 때는 이 카페의 시그니처인 에그 타르트에 딸기 케이크를 먹어 봐야겠다.
버터 풍미 가득한 파이지에 꾸덕꾸덕한 단호박 필링을 얹어 구운 타르트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 스쿱 올라간 차갑고 달콤한 생크림은 전반적으로 담백하고 건강한 파이의 맛과 아주 잘 어우러졌다. 구황작물 기본의 맛을 살린 단호박 파이는 많이 달지 않아서 한 조각을 다 먹어도 물리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우유랑 함께 먹으면 식사 대용으로도 든든하게 좋을 듯하다.
후암동 265-1
후암동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알고 있던 카페다.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홀케이크 주문을 받고 있어서 언젠가 친구의 케이크를 주문하려던 곳인데, 리뷰들이 워낙 좋을 뿐만 아니라 가게를 향한 애정까지 느껴졌었다. 어떤 곳이기에 손님들이 이토록 다정한 후기를 적어 줄까?
골목 안쪽 2층에 위치해 있고 간판이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가파른 계단을 조심조심 오르면, 오늘 처음 방문했지만 당장이라도 아지트 삼고 싶을 만큼 아늑한 전경이 펼쳐진다. 낡은 목제 가구, 빛바랜 책, 작은 가스난로 등등. 화룡점정은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단골손님들의 자필 편지 및 사진이다. 그것만 봐도 사람들이 이 작은 가게와 사장님의 케이크, 이곳만의 분위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조만간 책을 한 권 들고 가서 이 공간을 느긋하게 즐기리라.
초코케이크를 좋아하진 않지만 밀영의 초코케이크는 포크로 찔러 보지 않아도 생초콜릿처럼 엄청나게 꾸덕꾸덕해 보여서 굉장히 먹음직스러웠다. 정확한 이름은 산딸기 초코 가나슈. 그냥 초코케이크보다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가나슈인 만큼, 입에 넣었을 때 말 그대로 살살 녹는다. 위에 코팅된 딸기 퓌레는 무거운 초콜릿 맛을 상큼하게 중화해 주고, 딸기 씨앗이 씹혀서 식감마저 좋다. 마틸다 초코케이크를 찾는 사람들에게 단연코 추천해 주고 싶다.
후암동 244-64
핑크빛 외관이라 멀리서부터 눈에 잘 띄는 곳이다. 앞선 두 카페와 다르게 여긴 발효 빵이 유명한 곳이다. 창가에 긴 바 테이블 1개가 있어서 빵을 먹고 갈 수는 있지만, 매대와 테이블 사이 공간 자체가 협소해서 대부분은 포장 손님들 위주로 오가고 있다.
프랑스 리옹의 조용한 주택가에서 빵집을 운영하시던 프랑스인 남편 사장님, 한국인 아내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매장 한 면에는 국내외 잡지에 실린 따팡 베이커리 기사가 전시되어 있다. 빵집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내가 케이크를 고르고 포장을 기다리는 동안, 빵을 사려는 손님들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대부분은 여기서 자주 빵을 사 드시는 분인 듯, 진열된 빵을 다 살피지도 않고 익숙하게 빵 이름을 대셨다. “늘 먹던 거로 주세요.”라는 듯이 여유로운 느낌으로.
나도 깡빠뉴나 곡물빵을 먹어 보고 싶었으나, 오늘 컨셉은 케이크 투어이니 딸기 케이크를 주문했다. 둥글고 귀엽게 생긴 딸기 케이크는 기대 이상의 맛은 아니었다. 위에 뿌려진 카스텔라 가루가 보기에는 좋았으나 입에 넣으니 수분감 없이 흩어져서 식감을 떨어뜨렸다. 퐁신하길 기대했던 빵 시트는 시럽에 젖어서 축축한 편이었다. 듬뿍 들어간 생크림은 물론 그 자체로 맛있었지만 (빵 맛에 굉장히 관대한 편) 좀 더 고소한 맛이 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음번에는 바삭하고 노릇하게 구워진 이곳의 주 종목, 식사 빵을 사 와야겠다.
후암동 129
동네 골목에 하나쯤 있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를 환기하는 세련된 매장이다. 작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하던 에스프레소 바가 후암동에도 있었다니. 2021년에 오픈한 오르소(이탈리아어로 ‘곰’)는 형광 주황색을 이용해 감각적으로 인테리어를 했다. 날씨가 좋았다면 가게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홀짝여도 좋을 거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외국인 손님이 데려 온 대형견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맞아 주었다.
이곳의 티라미수가 기가 막힌다는 후기를 꽤 많이 읽었다. 따라서 에스프레소는 나중으로 미루고 티라미수를 주문했다. 매대엔 구움 과자류밖에 없어서 혹시나 품절인가 조마조마했었는데, 사장님은 냉장고에서 커다란 통을 꺼내 그곳에 가득 담긴 티라미수를 작은 통에 덜어 주셨다. 모양이 잔뜩 찌그러진 티라미수가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집에 와서 한 숟갈 퍼먹어 보니, 어디서 공수해 오시는지 마스카르포네 치즈 맛이 굉장히 진했다. 위에 뿌려진 코코아 가루는 입자가 고와서 기침 유발 없이 부드럽게 녹아버렸다. 뜨거운 에스프레소 한 잔을 곁들이면 단쓴단쓴 궁합에 티라미수 서너 접시는 가볍게 먹을 수 있겠다. 괜히 입소문이 난 게 아니구나 싶은, 내공 깊은 맛이다.
후암동 440
후암점이 있었다니, 정말 쾌재를 불렀다. 몇 년 전부터 정말 먹고 싶었던 곳이다. 19년도에 있었던 빵 도둑 사건으로 인해 (돈 훔치러 왔다가 빵만 먹고 갔지요~) 더욱 유명해진 써니 브레드는 글루텐불내증이 있는 사장님이 직접 개발한 NO 밀가루 빵을 판매하는 곳이다. 서울숲에도 매장이 있고 인터넷으로도 구매할 수 있다.
후암점 매장은 힐튼 호텔 맞은편에 있었다. 벽돌로 된 외관이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다. 내부는 통창으로 햇살이 잘 들어왔고 창밖으론 푸릇한 나무들이 보여서, 이곳에서 판매하는 빵처럼 건강한 분위기를 풍겼다. 넓고 쾌적한 공간 한쪽에서는 때때로 공연도 하고 있어서 악기들이 몇 개 놓여 있었다.
당근 케이크를 구매하려고 왔는데 인스타에서만 보던 초코파이 케이크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초콜릿이 코팅된 쫀득한 초코빵 사이에 두툼하게 샌드된 화이트 크림, 살짝 삐져나온 딸기잼. 이 비주얼을 참고 넘어갈 순 없었다. 집에 와서 차갑게 식혔다가 먹어 보니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빵의 식감은 떡과 비슷했다. 칼로 썰면 부스러지지 않고 탱글탱글한 푸딩이나 양갱처럼 단면이 깔끔하게 잘렸다. 무엇보다 빵 자체는 하나도 달지 않아서 크림과 같이 먹으면 달콤하게, 빵만 먹을 때는 독특한 식감에 온전히 집중해서 먹을 수 있었다. 재구매 의향은 무조건 있다. 조만간 다른 빵들을 먹어 보러 가지 않을까.
등잔 밑이 어둡다. 집 근처에 매력적인 빵집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주 주말마다 열심히 빵 먹으러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