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서 도인을 만난 날

그런 게 다 취향인 거지

by 부크럼


요즈음 나는 인터넷 쇼핑에 몰두하고 있다. 9평 원룸에서 14평 투룸으로 이사를 했더니 곳곳이 모자란 것투성이라 좀 더 편안하고 무드 있는 생활을 위해서는 자잘한 물건들이 많이 필요했다. 올해 다짐한 게 있다면 ‘아무거나 사지 말자’이다. 전에는 생필품을 살 때 빠르고 편리하니까 쿠팡을 주로 쓰거나, 어차피 오래 안 쓸 물건이니 다이소에서 저렴한 것을 구매하곤 했다. 돌아보면 그렇게 산 물건들은 물건 그 이상의 기능을 하지 않았다.


가령, 내가 자주 썼던 플라스틱 머그잔은 인어공주가 그려진 것이었는데 손잡이가 진주알 모양이라 한눈에 반해서 일본에서 직구로 구한 것이었다. 물을 따라 마실 때마다 예뻐서 감탄이 나왔다. 이 년 넘게 쓰는 동안 늘 아끼던 것이라 목마르지 않을 때도 괜히 물을 따라서 책상 언저리에 두었고 날마다 설거지도 꼼꼼하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둥근 컵을 지탱해 주던 꽃 모양 밑동이 툭 떨어져서 더는 쓰지 못하게 되었다. 무용지물이지만 아직 버리지도 못하고 있다. 반면, 요즘 쓰는 투명한 육각 유리잔은 어디서 사 왔는지 기억나지도 않고, 곁에 두고 물을 마실 때 아무 기쁨도 아무 감흥도 없다. ‘그냥’ 잔일 뿐이다.


이런 것을 삶에 비유해도 괜찮을까. 취향을 고심해서 선택한 삶은 언제 꺼내 봐도 흐뭇하게 좋은가 하면, 손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선택한 삶에 눈여겨볼 부분은 딱히 없을 거라는 것.


어제도 그 ‘그냥’ 잔에 물을 한 잔 따라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오늘의 집 사이트에 접속해서 빼곡하게 들어찬 여러 브랜드의 가구나 소품을 구경했다. 견고하고 튼튼한 것. 사이즈가 맞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 눈에 예쁜 것을 찾아 서핑에 서핑을 이어가던 중, 북한산에서 만난 도인이 문득 머릿속에 스쳤다.


2019년 여름, 나는 대학생이었고 평일엔 종종 혼자 등산을 다녔다. 웬만큼 유명한 산들도 평일 오전에는 한산해서 좋았다. 어느 날은 산을 오르다가 정말 독특한 분을 보았다. 그분의 모습을 묘사해 보자면, 숱 없는 길고 흰 머리카락을 마치 상투 틀듯이 정수리까지 끌어올려 꽉 묶었고, 깡마른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색 기능성 땀복을 입고 있었다. 가장 잊을 수 없던 건 그분이 메고 있던 낡은 배낭이었다. 도대체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국토 종주를 떠날 사람처럼 엄청 커다란 배낭이었다. 위에 침낭과 모포까지 쌓아서 자기 키보다 훌쩍 높이 솟은, 자기 몸보다 부피가 큰 배낭. 그것을 메고 그분은 검은 피부가 땀으로 번들거리는 데도 그 좁은 산 중턱 공터를 쉼 없이 뱅뱅 달리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그 옆을 지나쳤다.


정상에 오르고 다시 내려오는 길, 그 공터에는 아직도 그분이 바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달리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바위를 폴짝폴짝 토끼처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산은 너무 고요했다. 나는 제발 그분이 나를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며 또다시 조용히 그 곁을 지나려는데, 갑자기 그가 날다람쥐처럼 내 쪽으로 달려와서 내 앞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나는 놀라서 악! 소리를 질렀는데, 그분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내게 조용히 물었다.


"코에 그게 뭐야?"

"⋯ 제 코요? 피어싱이요?"


그분은 잠시 내 콧방울에 반짝이는 피어싱을 뚫어져라 보았다. 멀리서 이게 어떻게 보였을까 의아했지만 나는 가만히 서서 그가 내 코를 관찰하도록 했다. 부모가 주신 몸을 그렇게 훼손하면 어쩌냐는 둥, 잔소리가 튀어나올까? 나는 그다음 상황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서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런 게 다 취향인 거지."


그리고 다시 공터로 돌아가서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아주 무거운 배낭을 메고 몸을 혹사하는 일. 내게 ‘취향’이라는 말을 남겨 주고 말이다. 국어사전에 취향이라고 검색해 보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산에서 내려오는 내내 나는 ‘취향’이라는 말을 곱씹다가 그에게 도인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일주일 뒤에도 북한산에 올랐지만 그 후로 도인을 다시 만난 적은 없었다.


나는 가끔 그 도인을 떠올리며 도인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내 이야기 속에서 도인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준비를 하는 취향을 가졌다가, 이 산 저 산을 옮겨 다니며 자연을 향유하는 취향을 가졌다가, 록키처럼 무명의 복서인데 큰 시합을 준비하기 위해 혹독한 트레이닝을 하는 취향을 가졌다가⋯⋯ 사실은 어제까지만 해도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어느 회사의 부장님이었다가. 도인의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 물어보는 상상도 했다. 어떤 취향이 도인을 그때 그곳으로 데려다주었을까. 또 지금 그의 삶은 어떤 취향을 따라가고 있을까. 궁금해하는 내 코에는 여전히 피어싱이 반짝이고 있다.


새로 이사 온 집을 둘러보았다. 아직은 내 취향이 많이 묻어 있지 않았다. 집 꾸미기를 준비하며 새로 알게 된 나의 취향이 있다면, 가구를 고를 때는 화이트보다 우드를 선호한다는 것. 접시는 모던한 라인 디테일보다는 꽃무늬가 들어간 빈티지한 느낌이 좋다는 것. 벽에 붙일 인테리어 엽서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에 끌리고, 주방이나 화장실 소품은 의외로 노란색이 예쁘다. 취향을 하나둘 재정비하며 수집하다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밋밋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었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소한 취향을 고민하며, 이런 결정들이 모이고 모여서 나 자신을 더욱 건실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에 기여할 거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자신의 취향을 알아간다는 건 곧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기에도 바쁘겠지만, 모두가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고 쫓아가며 더 윤택한 삶을 꾸려가는 걸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라며, 사실은 내가 이제부터 더욱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며, 장바구니에 오랫동안 고민하고 비교하다가 최종적으로 골라낸 원목 의자를 담았다. 그 의자에 앉아서 취향 따라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매일 한 걸음씩 더욱 나답게 나아갈 날들을 기대해 본다.


KakaoTalk_20230127_145004825.jpg 새로 산 '취향 듬뿍' 빈티지 접시, 고블렛 잔, 조개 스푼, 신년 토끼 머그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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