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집에 있던 날

오늘은 집과 작별할 준비를 했다

by 부크럼

지난 일요일은 하루 종일 집에 있기로 결정했다. 4년을 살았던 동네에서 이사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떠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나만의 공간에서 온종일을 혼자 보내고 싶었다. 평일엔 회사에 출근하고 토요일은 학원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일요일은 시간을 쪼개 가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했으니 누구도 만나지 않고 집에서 온전히 내 시간을 갖는다는 건 코로나 자가격리 이후로 반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질적으로 장기적인 고립과 고독이 꼭 필요했던 내게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날이 얼마나 그립고 고팠는지.


혼자 온종일 집에 있는 날, 나는 뭘 하고 싶었을까?

일주일 내내 계획을 세웠다.


창밖으로 해가 바뀌는 걸 이따금 올려다보며 오랜 시간 공들여 읽을 장편 소설 한 권을 신중하게 골랐다. 감성이 잘 맞아서 종종 전시며 연극 관람 등 문화생활을 함께 다녔던 친구에게 러닝 타임이 긴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동네 통닭집에서 파는 후라이드 치킨을 껍질까지 남김없이 먹으려고 금요일엔 유산소 운동을 평소보다 더 오래 했다. 오후 내내 집어 먹을 간식으로는 망고를 미리 사서 후숙해 두었고, 토요일에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엔 강냉이도 한 봉지 샀다.


고대하던 일요일은 유난히 미세먼지가 많았다. 쾌청한 햇살이 집으로 쏟아지길 기대했으나 잿빛 행성을 둥둥 떠다니는 우주선에 들어 있는 기분으로 창밖을 보는 것도 나름 재밌었다.


KakaoTalk_20230113_115042646_03.jpg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오전에는 좀처럼 쓸 일이 없던 베드 트레이를 펴고 커다란 쿠션에 기대어 앉아 침대에서 노트북을 했다. 핸드폰에 틈틈이 메모해 두었던 문장들을 다듬어 정리하며 다음번에 쓸 소설을 구상했다. 2월 말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올해의 첫 소설을 완성할 거라고 다짐하며 그동안 내 안에 고였던 장면들이 무엇이고 요즘의 나는 무엇을 화두로 보고 있는지, 일상에서 어떤 징조를 느꼈는지 차근차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침대에서 나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서 작은 덤벨을 양손에 들고 9평짜리 원룸의 정중앙에 섰다. 평소에는 둥글고 폭신폭신한 카펫을 깔아 놓는 곳이지만 운동할 때면 카펫을 걷고, 한구석에 둘둘 말아 놓았던 보라색 요가 매트를 펼쳤다. 그곳에서 어깨 운동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스쿼트도 하고, 버피 테스트도 했다.


한바탕 땀을 흘린 후 개운하게 샤워를 했다. 쉬는 날이니 화장실 물청소까지 여유롭게 구석구석 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을 때는 이 집을 매일 쓸고 닦고 환기하며 청결하게 유지하고 지내는 걸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문득 떠올랐다.


강냉이를 커다란 스테인리스 볼에 덜어서 푸른색 스웨이드 조개 의자에 앉았다. 우측에 놓인 장 스탠드를 켰다. 의자에 한껏 몸을 웅크리고 담요를 덮은 채로 하이스미스의 데뷔작인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읽기 시작했다. 300페이지 내내 흐르던 서스펜스에 푹 빠져서 읽다 보니 밝았던 집에 점점 어둠이 내려앉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는 저녁 6시가 넘어 있었다. 접시 한가득 썰어 놓은 망고까지 다 먹었는데도 출출했다.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돌아보니 조개 의자에는 내가 앉았던 모양이 우묵한 자국처럼 남아 있었다.


해가 질 때 방 한 구석


집에서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경리단길 터줏대감인 엉터리 통닭이 있다. 3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치킨을 포장해 가던 곳인데 코로나가 이태원 쪽을 직격하고 지나간 후부터는 오랜 단골들만 찾는 거 같았다. 이날도 좁은 가게는 한산했다. 날 반겨 주시는 여자 사장님이 계셨으면 했는데 남자 사장님 혼자서 닭을 튀기고 계셨다. 하얀 종이봉투에 담아 주신 치킨을 들고 집으로 뛰어들어 갔다. 고소한 치킨 냄새가 집 안에 퍼졌다.


1년 전인가, 침대 좌측 벽에 붙여 놓았던 책장을 부엌 쪽으로 옮겼다. 비워진 공간에 직사각형 러그를 깔고 커다란 삼각 쿠션과 좌식 테이블을 놓았는데 겨울에 보일러를 켜 두면 바닥이 뜨끈하니 좋아서 책상보다 그곳에 더 많이 앉아 있게 되었다. 튀김 껍질이 두껍고 바삭바삭한 치킨을 발라 먹으며 삼각 쿠션에 기대어 앉아 <토니 에드만>을 봤다. 잔잔하지만 위트 넘치는 162분짜리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하루가 저물었다.


KakaoTalk_20230113_123725884.jpg 진짜 맛있는 치킨...♥


아직 남은 일과들이 있었다. 부엌 쪽으로 옮겼던 책장에 꽂힌 몇백 권의 책을 훑어보며 이사 가기 전에 짐을 줄일 겸 알라딘에 팔 책을 골랐으나, 단 한 권도 고르지 못했다. 부엌에서 하루 치의 설거지를 한 후에 타일에 묻은 묵은 얼룩을 물티슈로 꼼꼼히 닦았다. 취향이 바뀌어서 이사 갈 집에는 들고 가지 않을 하얀 이케아 책상에 앉아 일기장을 펼쳤다. 첫 문장을 적으려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아담한 내 집을 찬찬히 보았다.


침대, 중앙 카펫, 화장실, 조개 의자, 삼각 쿠션, 책장, 부엌 그리고 책상까지. 내가 일주일 내내 계획했던 건 내 집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공간들에서 무엇을 하며 어떤 시간을 보낼 것인지였다. 여행 코스를 짤 때처럼 아주 섬세하게 만든 하루였다.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은 집과 작별할 준비를 했다.


정용준 작가의 <소설 만세>에서 작가는 ‘이별’과 ‘작별’의 다름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다. ‘이별’은 어느 한쪽은 준비가 되었으나 어느 한쪽은 준비가 되지 않은 쪽에 가까운, 누군가는 바라지 않은 헤어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연인들끼리는 갈라섬을 앞두고 둘의 마음이 똑같을 수 없으니 ‘이별’했다는 단어를 쓰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작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것이다. 온종일 고요했고 따뜻했던 하루, 나는 집도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고 생각했다.


이사를 앞두고 누군가는 참 유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정말로 이 집을 좋아했고 이 집이 소중했고 집에게 참 고마웠다. 2019년 8월에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이후로 내 하루는 이 공간에서 시작하고 끝났다. 밖에서 심신이 지치고 피로해지면 이 공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전부 있는 나만의 집으로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음을 떠올렸다.


KakaoTalk_20230113_115042646.jpg 큰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정들었던 경리단길 집을 떠난다고 전하니 한 친구가 내게 ‘집에서 사진을 많이 찍어 둬.’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핸드폰 앨범을 뒤적였는데 집 내부를 찍은 사진은 몇 장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태어난 이후로 수많은 집을 거쳐서 이 집으로 왔지만, 한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그 집들이 어땠는지 너무나 가물가물하다. 창밖의 풍경은 어땠는지, 어떤 가구를 썼는지, 어떤 이불을 덮고 잤는지.


나로 인해 만들어졌고 내가 떠남으로써 완전히 사라질 공간을 사진으로 잘 남겨두어야겠다. 이사를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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