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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럼 Sep 14. 2020

황당한 이유로 고백을 거절당한 남자





“나 할 말 있어요.”


“잠시만요, 말굽이 왜 U자인지 알아요?”


할 말이 있다고 말하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영화같이 달콤했던 둘 사이의 분위기를 흐렸다. 나는 시큰둥한 말투로 답했다.


“글쎄요. 달리는 말에는 그다지 관심은 없어서요.”


그녀를 바라보며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려는 내 입술을 끊는 말의 주제가 겨우 말굽이라니. 나는 속상한 마음에, 스치듯 그녀를 힐끗 보고 고개를 아래로 내려서 딴짓을 했다. 하지만 이내 귀 기울여 들어보기로 했다. 말굽이 왜 U자인지 물어보는 엉뚱한 질문과 맞지 않게, 스치듯 쳐다본 그녀의 눈빛은 차분하고 위태로웠고 쓸쓸했기 때문이다.


“뭔데요?”


“좋아요. 말굽이 U자인 이유는 말 발톱이 U자로 자라나서 그런 거래요. 그럼 왜 말 발톱이 U자로 이어져 자라는지 알아요? 그건요, 원래 U자 형태의 몇 갈래로 갈라진 발톱 사이로 자꾸 흙이나 돌 따위 이물질이 껴서 달리는 데에 불편함을 느낀대요. 그래서 서서히 하나로 합쳐지도록 진화했다더군요. 그것들이 합쳐서 완전한 U자를 이루게 된 거죠. 그럼 왜 말굽을 끼우는지 알아요? 그건요 말 발톱이요, 오래 달리다 보면 자꾸 갈라지려고 한대요. 달리는 데 불편해서 합쳐진 것들이요, 오래 달리다 보면 이젠 갈라지려고 한다니까요. 그 갈라지려는 발톱을 종속시키기 위해 말굽이 있는 거예요.”


차분하던 그녀의 눈은 거친 파도처럼 흔들리고, 목소리는 파들파들 떨렸다.


“있잖아요, 내가 어느 사람과 혹은 어느 사람들과 무엇을 하다가 혹은 어느 사이에 있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라도 합쳐진 순간부터는 갈라지는 것의 연속이에요. 당신이 나와 어느 공간에 어느 사이에 무엇이 껴들어 무엇이 그렇게 불편해서 합쳐지려는지 모르겠는데요. 그 순간 우리는 갈라지기 위한 치열한 레이스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덜컥 겁이 나요. 우린 합쳐진 순간, 종속시킬 무언가에 얽매여야만 갈라지지 않을 수 있잖아요. 나는요. 그래서 무서웠어요.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게 그렇게 무섭더라니까요. 합쳐진다는 것은 갈라지기 위한 중간점에 지나지 않는다랄까요.”



<편지할게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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