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나가는 사업가와 결혼했다.
초호화 아파트, 단란한 가정,
모자랄 것 없이 모든 게 만족스럽다.
죽어도 숨기고 싶은 비밀 하나만 제외하면.
나는 통영 옆 작은 섬, 무억도에서 태어났다.
섬은 평온했지만 지긋지긋했다.
19살이 된 어느 날 밤,
나는 가족과 친구, 이름까지 그 섬에 버렸다.
그리고 도망치듯 그 섬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세 가지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와 결혼했다.
SNS를 하지 말 것, 이름을 바꿀 것, 과거의 모든 인연을 정리할 것.
새로운 나의 삶은 완벽에 가까웠다.
어느 날 내 앞에 향수 하나가 배달되기 전까진…
상자 안에는 향수와 함께 쪽지 한 장이 있었다.
'보고 싶어, 영선아'
영선은 16년 전에 섬을 떠나며 버렸던 내 이름이다.
내 과거를 알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버리고 떠난 친구들일까?
그때부터 섬 시절의 친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카페에서, 하루는 거리에서. 심지어 내 아들 곁에서.
외면하려 할수록 자주 가까이 나타났다.
숨겨둔 과거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완벽했던 일상이 하루아침에
살얼음판 위에 세워진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때였다. 섬 시절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영선아, 선물 고마워."
내가 선물을 보냈다고?
내게 향수를 보냈던 누군가가
이번엔 섬 시절의 친구들에게 디퓨저를 보낸 것이다.
분명한 협박이다. 날 알고 있고 날 무너뜨릴 수 있다는 뜻.
'절대 안 돼.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친구들은 내 과거를 빌미로 돈을 요구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 주위를 조용히 맴돌며 나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 선물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야 한다.
"영선아, 우리는 그날의 범인으로 널 지목할 거야"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나는 내 삶을 지켜낼 것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새롭게 나타나는 욕망의 그림자!
연민과 질투로 뒤범벅된 숨 막히는 심리전!
이수진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향수에 젖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