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이궁

에이궁:에디터 해해의 이상한 궁금증

00. Prologue / 다들 궁금함을 참고 사십니까?

by 부크럼

당신은 궁금증이 많은 편입니까? 오늘 하루 자신이 얼마만큼 질문을 하고 궁금해했는지를 돌아볼까요. 별로 궁금한 하루를 보내지는 않았다고, 혹은 오늘은 궁금한 게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의문이 들었던 점들을 의식하고 세어 보면 실상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세어 보고는 깜짝 놀랐거든요.


오늘 친구와 교외로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그중 몇 장면을 되돌아보겠습니다.


해해: 여기 공원 뷰가 너무 좋다. 이 근처 아파트는 시세가 얼마 정도 하려나.

친구: 글쎄, 아무래도 부자들이 살겠지?


해해: 와, 카페에 나무가 엄청 많네. 이거 관리는 다 어떻게 하려나.

친구: 그러니까...


(그리스식 음식점에서)

해해: 라자냐를 파네. 라자냐는 이탈리아 음식 아닌가?

친구: 그런가?


친구: 먹어 보니 이탈리아 라자냐랑 그리스 라자냐가 뭐가 달라?

해해: 음 글쎄... 근데 이거 맛있다.


잠깐만 떠올려 봐도 이렇게나 많은 질문이 오갔는데, 흘러가는 질문 속에서 아무런 답을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검색 몇 번이면 바로 알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죠. 이런 소소하고 가벼운 질문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가끔 진득한 질문을 남몰래 던지기도 합니다. 나의 결핍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까지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는 뭘까. 진정한 의미의 용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일까...


섬광처럼 스치는 이런 무수한 질문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꺼내 잡아 답을 구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사람은 질문이 떠오를 때 답을 좇았고, 어떤 사람은 그저 궁금한 채 묻어뒀다고 가정해 봅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둘의 생각과 가치관에는 많은 차이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삶 자체가 달라져 있을지도요.


누구나 로또에 당첨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로또를 사는 사람도, 그리고 로또를 사지 않는 사람도요. 그러나 당첨되는 사람은 100%의 확률로 로또를 사는 사람일 테죠.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저도 로또를 구입하지 않으면서 당첨을 꿈꿔왔지만, 이제부터라도 로또를 구입하는 마음으로 제 안에 떠오르는 궁금증에 대한 답을 하나씩 찾아가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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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릴 때부터 궁금증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딱 평범할 만큼 세상을 궁금해하고 그만큼만 알아갔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는 그나마의 궁금증마저 사라져 갔습니다. 세상이란 적극적으로 알아가고 탐구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받아들인 만큼 감내하기에도 버거운 대상으로 느껴졌으니까요.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제가 계속 관심이 가고 궁금증이 생겨났던 분야는 언제나 ‘국어’와 ‘언어’였습니다. 그래서 국어를 공부했고, 에디터가 되어 글을 만지는 일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기억할 수 있는 국어에 관련된 ‘최초의’ 의문은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수학 시간에 단위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습니다. kg, g, m, cm, mm... 담임 선생님께서 칠판에 cm라고 쓰고 정자(굉장한 궁서체)로 ‘센티미터’라고 쓰셨습니다. cm은 [센티미터]라고 읽는구나.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우리 집에 사는 어른들이 저걸 [센치미터]라고 읽는 걸 저는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심지어 담임 선생님도 쓰기는 ‘센티미터’라고 쓰고 읽을 때는 [센치미터]로 읽으시는 겁니다. 8살의 어린 저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수업 도중 손을 들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왜 센티미터가 아니라 센치미터라고 하나요? 선생님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하신 듯했지만 센티미터라고 읽어도 되고 센치미터라고 읽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글자를 이렇게 읽어도 되고 저렇게 읽어도 된다니? 너무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더 꼬치꼬치 캐물을 용기는 나지 않아 그렇게 궁금함을 마음속에 묻어 두었습니다.


cm는 은근히 일상에서 쓸 일이 많은 단어였고, 그 단어를 쓸 때마다 혀가 아주 잠시간 멈칫, 했습니다. 혀는 그 단어를 ‘티’로 발음할 것인가 ‘치’로 발음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했고 어떨 때는 ‘티’로 어떨 때는 ‘치’로 소리 내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즈음에 그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바로 [경구개음화]라는 개념을 배우면서였지요. 그렇구나. 한국인은 ‘ㅌ’과 ‘ㅣ’발음을 함께할 때 ‘ㅊ’으로 발음하는 특징이 있구나. 국어에 그런 특성이 있고 cm라는 외국의 문자로 된 단어가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우리나라 말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자연스럽게 사용되면서 국어 발음법의 영향을 받아 그렇게 발음되었겠구나. 그제야 마음이 시원해졌습니다. 이것이었구나...! 그리고 그 이후로 저는 멈칫하지 않고 ‘센치’라고 당당히 발음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더 공부를 한 지금은, 그때 생각했던 것처럼 경구개음화가 ‘굳이[구지]’와 같이 센티미터와 완전히 딱 맞는 예는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요.)


센치미터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답을 찾은 것들도 있고, 여전히 잘 모르겠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문자를 보면서, 글을 읽으면서, 원고를 편집하면서 궁금해했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해요. 과거에 속 시원했던 경험들도 되짚어 보고, 궁금해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답을 찾아가 볼 겸이요.


당신도 당신만의 궁금증이 있겠죠? 이제부터는 그 답을 좇아 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나둘 질문에 대한 답을 수집하다 보면 그저 의문만 가득한 채 물음표들을 흘려보낸 당신과는 완전히 다른,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세상이란 책을 더 탐독하는 당신을 만나게 될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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