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크럼에 입사한 날

내 인생 또 어디로 가게 되는 거지?

by 부크럼


부크럼 출판사와는 애초의 접점이 있었다.


2022년 1월, 대학 졸업심사에 통과한 겨울이었다. 환경이 또 한 번 바뀔 시기에 놓인 나는 조금의 위로와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신간 소설을 사러 들른 서점에서, 평소답지 않게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제목의 에세이까지 함께 구매했으니 말이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그날 새벽에 책을 읽던 중, 266페이지에서 267페이지를 넘기다가 어어? 하고 멈춰버렸다. 우연치고는 좀 놀라운 게 있었다. 나는 곧장 부크럼 출판사를 검색해 보았다. 출판사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마치 짜인 시나리오처럼 '에디터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입사 지원서에 썼던 문장을 아래에 인용한다.


엽서 인증샷

266페이지와 267페이지에 앞뒤로 실린 사진을 보았습니다. 제가 작년 가을부터 책상 앞에 붙여 놓은 엽서 사진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책상 앞에는 엽서 3장이 붙어 있는데, 그중 두 장이 제가 구매한 책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에 앞뒤로 나란히 실린 것은 정말 신기한 우연입니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넘길지라도, 저는 그 우연한 접점에서 저와 부크럼 출판사 사이에 어떠한 징조가 내비쳐진 것은 아닐지 상상해 보며 두근거렸습니다.


공들여 쓴 입사 지원서 마지막 단락에 굉장한 TMI를 흘려놓고서 내심 연락을 기다렸다. 그 뒤로 면접부터 합격, 첫 출근까지는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내 인생 또 어디로 가게 되는 거지? 짚어 볼 새도 없었다.


돌아보면 철저한 계획형 인간치고는 참 징하게도 즉흥적이었다. 작년 여름에는 자서전 대필 작가로 경기도부터 전라도까지 저자 인터뷰를 하러 다녔고, 재작년 여름에는 이태원에서 바텐더를 했다. 3년 전 여름에는 밤낮없이 영화를 찍고 있었다. "요즘 뭐 없지? 이거 해 볼래? 좀 새로운 거야."라고 누군가 제안을 내어 놓으면 "오 재밌겠다!"하고 큰 고민 없이, 운전대를 휙 꺾어버리면서 살았다.


1월 17일 월요일, 첫 출근 날은 아주 추웠다. 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가다가 포장마차에서 계란빵 하나를 사서, 손난로처럼 꼬옥 감싸 쥐고 걸었다. 내 몫의 컴퓨터를 받고, 15페이지가 넘는 인수인계서를 읽어 보면서 내 업무가 무엇인지 더듬더듬 감을 잡아갔다. 지난 사랑에 관한 원고를 오후 내내 읽으며 문장을 다듬다가 퇴근하니, 눈이 새하얗게 내려 있었다. 건물마다 우르르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그 눈을 밟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인파를 비추는 대로변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따뜻해 보였다.


또다시 뭔가가 시작되었다고, 그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며 그제야 덜컥 실감해 버렸다.


이런저런 날들을 거쳐서 지금 나는 부크럼 출판사의 에디터로 앉아 있다. 출간 직전까지 애정을 갖고 읽고 또 읽은 원고들이 한 권의 책이라는 어엿한 물성을 갖춰 전국 서점과 독자 분들의 집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그 책에 내 노고도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이름 모를 여러분들과 돈독한 연대감이 든다. 우리가 책으로 만나서 마음을 나눌 수 있음이 새삼 경이롭다.


동료들 전부와 끈끈한 우정 관계를 쌓기는 어렵지만, 남몰래 회사 사람들을 조금씩 좋아하는 중이다.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부크럼 책이 더 많은 독자 분들과 만날 수 있도록,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출간 족족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싶은 야무진 목표로 오늘도 부크럼에 출근했다.


우리가 좀 더 긴밀하게 닿을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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