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은 드라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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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이다. 우린 자정이 훌쩍 넘어 상수동 어느 작은 술집에서 만났다. 나는 야근을, 그녀는 공연 연습을 마친 지친 새벽이었다. 우리 둘은 자주 새벽에 만나 소주를 마셨다. 대부분 친구에게 우린 현실감 없이 꿈을 좇는 사람으로 비쳤기에 어떤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으면서 “우리 꼭 성공하자. 다 죽었어!” 하면서 꿈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곤 했다.
친구들이 좋은 회사에 취직할 때, 나는 연봉이 낮은 회사로 이직했고, 문 배우는 뮤지컬을 하기 위해 동네 술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내가 하는 일을 친구들이 비웃는 것 같았다. 나의 선택들을 손가락질한다고 생각해 뒤통수가 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격지심이었지만, 당시에는 내 꿈을 모두가 하찮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나 축복해달라는 거 아니야. 그냥… 누군가 한 사람은 내 편이어야지. 너는 내 편이어야지.”
8년이 지난 지금, 우리 둘은 잘 나가는 배우가 되지도 못했고, 잘 나가는 디자이너가 되지도 못했다. 문 배우는 여전히 서빙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일 년에 한두 번 오르는 공연에 기뻐하고, 무대에 설 수 있는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산다. 나도 우주 최강 디자이너를 포기했고, 회사를 관뒀다. 프리랜서가 되었고, 일이 없으면 침대에 누워있는 게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20대가 지나갔다.
문 배우가 하루는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그런 말을 한다. 일 년 동안 작은 배역의 오디션마저도 수없이 떨어진 후였다.
“나 관둘까 봐…”
그 말을 듣는데 철렁한다. 곁에 있으면서도 불안해 보였다. 10년 정도 열심히 하면 부자는 못 돼도 월세 걱정은 없이 살 줄 알았는데, 우린 여전히 월세를 걱정하고, 오만 원이 조금 넘는 옷을 살 때도 망설인다. 초라한 30대가 돼 버린 걸까, 자괴감에 뒤척이던 밤들도 있었다. 디자인을 때려치우겠다며 하드를 포맷하고, 훌쩍 떠나버린 그날의 나 같은 기분이겠지.
문 배우에게 같은 편이 되어주고 싶었다. 가족도, 친구도, ‘너 이제 그만했으면 됐어, 내려와.’라고 회유할 때 붙잡아주고 싶었다. 그녀의 용기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우리 딱 한 번만 더 오디션 보자. 그리고 안되면, 관둬버리자. 바닷가 앞에서 기타나 치고 베짱이처럼 살아버리자. 딱 한 번 만 더 해보고. 응?”
친구는 오디션에 합격했다. 간절히 원하던 공연에 감초 역할로 캐스팅되어 대학로에서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문 배우와 합격 축하주를 하며 우리의 꿈에 관해 이야기 한다. 누구는 회사원이 되고 평범한 가정을 꾸려 예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삶, 누구는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며 사는 삶, 그게 꿈이 될 수 있겠다. 그럼 우리의 꿈은 뭘까?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우리는 이렇게 답할 거라 말한다.
“날마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문 배우는 잘 나가는 유명 배우가 되진 못했지만, 공연을 할 수 있는 이 순간순간이 모두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꿈을 포기한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성취를 버린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제 성취를 좇지 않고, 꿈이 있는 하루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게 나와 그녀의 최종 꿈이다. 비록 이 개똥철학이 우리의 자기 합리화라 할지라도. 우린 오늘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정도면 멋있는 삶이잖아, 사람 미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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