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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랑B Oct 24. 2021

내가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허유정,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를 언제 어디서 처음 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2년쯤 전이리라 짐작한다. 단어 뜻이 궁금해 인터넷에 검색하자 가장 위에 뜬 블로그 포스트가 일회용 생리대 줄이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생리대 하나를 만드는 데 비닐봉지 4~5개 분량의 플라스틱이 쓰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2017년 생리대 유해성분 파동 이후 국산 일회용 생리대 대신 유해성분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외제 생리대를 쓰면서 정작 내가 달마다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 면 생리대, 생리컵 같은 대안 용품도 몸 건강을 지킨다는 관점에서 정보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지구가 이제 더는 인간의 쓰레기 배출을 감당할 수 없다는 신호를 몇 년에 걸쳐 보내오는데 나 하나 편하자고 일회용 생리대 사용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이전에도 면 생리대나 생리컵 사용을 고려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가격과 사용방법 면에서 심리 장벽이 높아 망설이던 차였다. 내가 본 블로그 포스트 작성자는 생리팬티를 추천했다. 면과 대나무 소재로 여러 겹의 방수층을 만들어 흡수율이 높고 옷이나 이불에 새지 않으며 일반 빨랫비누로 잘 빨린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팬티 한 장당 3~4만 원씩 하는 가격이었다. 생리 한 번 할 때 팬티 6~7장을 쓴다고 치면 18만 원에서 25만 원을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면 생리대도 비싸서 쓸 엄두를 못 내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초기 비용만 감당하면 10년도 쓸 수 있는 다회용품이니 쓰레기 배출도 줄이고 건강에도 좋고, 일석이조라고.



허유정의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전자책. 일상에서 지속 가능한 쓰레기 줄이기 실천 팁을 다양하게 알려준다. 



 허유정의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는 그즈음 온라인 서점 추천도서로 만난 책이다. 가격 장벽은 어떻게 극복했는데 여전히 손빨래의 장벽 앞에서 망설이던 내게 결단의 불을 댕겨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독일 함부르크로 휴가여행을 갔을 때 들른 제로웨이스트 카페가 너무 멋져서 제로웨이스트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거창한 대의가 아니라 "멋있었고, 따라 하고 싶었고, 그리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고. 나 역시 환경 지키기에 동참하는 동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나의 일회품 남용을 묵묵히 받아준 지구에게 빚을 갚기 위해 뭐라도 실천한다는 점이 중요하지 않을까.



면 생리대는 사용한 뒤 바로 씻어 두니, 보관할 쓰레기가 없다. 종종 씻는 게 힘들 것 같아 쓰는 게 망설여진다는 친구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속옷 갈아입는 거 귀찮아? 세수하는 거 귀찮아?"
그만큼 이제는 의식하지 못할 만큼 익숙해진 면 생리대. 처음에는 불편했던 것 같기도 한데, 이제는 속옷을 갈아입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면 생리대는 아무래도 휴대하기 불편할 것 같아서 생리팬티로 바꾸기로 최종 결정하고 넉넉하게 여덟 장을 구매했다. 막상 착용해보니 방수층이 두껍긴 해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고 생리혈 흡수율이 높고 무엇보다 생리대를 비닐에 돌돌 말아 버리는 등의 뒤처리를 할 필요가 없어서 편했다. 손빨래도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원래도 생리기간에 속옷을 자주 빨았기 때문에 빨래 횟수가 조금 늘어난 것 말고는 그렇게 귀찮지 않았다. 빨랫비누는 아기 옷 빨래용 천연비누를 쓰고, 양 많은 날에는 역시 면으로 된 교체용 패드(일회용 생리대 중형 사이즈)를 방수 파우치에 넣어 갖고 다니면서 네 시간마다 바꾼다. 두 시간마다 갈아야 하는 일회용 생리대에 비하면 이 또한 장점이다. 이런 줄 알았으면 면 생리대를 썼어도 괜찮았겠다 싶다.


 한번 친환경용품 사용에 맛(?)을 들이니 다른 데로도 관심이 갔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테이크아웃 머그를 쓰지 않으려고 텀블러를 사서 들고 다니다가 자연히 건강을 생각해서 물을 담아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지난여름에는 독일산 공정무역 디카페인 커피를 샀는데, 비닐로 개별 포장된 제품 대신 유리용기에 든 것을 사서 몇 달째 마시는 중이다. 이외에도 손쉽게 바꿀 수 있는 물건이 바로 칫솔이다. 두 달에 한 번은 교체해야 하고 집과 회사에서 따로 쓰기 때문에 일 년에 열다섯 개씩 버리곤 했는데 저자가 쓴다는 나무칫솔을 사서 써 보니 향도 좋고 칫솔모 감촉도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몇 달에 한번 칫솔을 새로 사러 사이트에 접속하면 내가 그간 몇 개의 플라스틱을 줄였는지도 알려 줘서 은근히 뿌듯하다.


 그렇긴 한데 내가 이런다고 뭐가 나아질까 싶은 날이 종종 있다. 예컨대 나무숟가락으로 머그에 커피가루를 담아 물을 붓는 내 옆에서 종이컵에 비닐로 포장된 믹스커피를 붓는 회사 사람을 볼 때. 동네 마트 계산대에서 천으로 된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사람이 나뿐임을 문득 깨달을 때. 동생들에게 면 생리대나 생리팬티를 써보지 않겠냐고 권하면 완곡한 거절의 말이 돌아올 때. 나도 생리팬티를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돈과 품이 많이 드는 게 현실이라 뭐라고 할 수 없지만, 매달 쓰레기통에 가득 찬 생리대 쓰레기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이럴 때는 다음 구절을 떠올리면서 가라앉은 마음을 다독인다.



집들이 때 수저가 없으면 일회용품을 꺼내기도 한다. 텀블러를 못 챙긴 날, 너무 목이 마르면 생수를 사기도 하고, 정신없을 땐 나도 모르게 물티슈에 손이 가기도 한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쉽지만,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중요한 건 이제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쓰레기를 만든다는 거 아닐까? 좋은 일도 즐겁게 해야 오래할 수 있다.



 저자만의 깨달음이 아니라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많은 사람들의 지침이기도 하다. 친환경제품을 찾으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일회용품에 의존하던 생활습관을 하나씩 바꾸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우리 집코로나 판데믹 이후로 쓰레기 배출에 민감해졌다. 분리수거를 좀 더 신경 써서 하고 뭘 사러 나갈 때는 집안에 넘쳐나는 비닐봉지를 챙겨 간다. (이걸 자꾸 잊어버려서 아예 현관 앞에 비닐봉지 든 종이백을 뒀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환경운동단체에 기부하기는 쉬워도 한번 쓰고 버리면 되는 편리함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일을 오래 하려면 끊임없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저자가 어쩌다 실수를 하는 날이면 '아쉽지만 이런 날도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듯이.


 나도 사람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큰 도움이 됐다. 제로웨이스트는 쓰레기를 절대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으로 줄이는 삶을 뜻하며, 쓰레기를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사실상 불능하다고 본다. 나를 예로 들면 자기 전까지는 생리팬티를 착용하지만 일곱 시간 넘게 착용해야 하는 밤용 팬티는 수용량이 모자라서 일회용 오버나이트를 사용한다. 이건 한 달에 한두 개 쓰니까 괜찮을 거라는 위안이 가능했는데 진짜 문제는 팬티라이너였다. 생리 전후 분비물이 나올 땐 이것만큼 편한 물건이 없는데 대용으로 나온 라이너프리는 가성비가 너무 나빴다. 별 수 없이 일회용 팬티라이너를 되도록 적게 쓰느라 은근히 스트레스 받다가 얼마 전에 친환경 펄프 소재로 만든, 물에 녹는 팬티라이너가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덕분에 동생들과 지인들에게도 마구마구 추천할 수 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펄프 리대도 빨리 식약처 안전검증을 통과해서 시판됐으면 좋겠다.


 몇 달 전부터는 샴푸바를 쓰고 있는데 이것도 상당히 만족스럽다. 만성이던 두피 가려움증이 많이 완화됐고, 주위에서 머릿결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들어서 기분도 좋다. 무엇보다 미끈거리는 샴푸를 싫어해서 종종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던 아빠가 샴푸바를 너무 마음에 들어 하셔서 뿌듯하다. 나와 아빠가 샴푸바 칭찬입에 달고 사니까 다른 식구들도 은근슬쩍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이런 과정에서 깨달은 한 가지는, 좋은 일은 한 번에 빠르게 퍼지지는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나도 한번 해볼까?' 하마음을 일으키는 데는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서두르면 신중하게 짚고 넘어가야 점들을 지나치게 되어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를 쓴 김백민 교수는 인간이 기후위기를 초래한 것은 맞지만 지나친 비관주의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구 온도가 5도 오르면 멸망한다는 시나리오는 인간이 지금보다 탄소를 5배 이상 배출한다는 가정이 전제된 것으로, 그런 계산대로라면 현재 400ppm인 대기 중 화탄소 농도가 2100ppm까지 치솟는다는 얘기다. 기후위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 못지않게 비과학적이고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는 각국 정부와 사람들의 의지를 꺾는 이 시나리오는 배제하는 게 현명하다. 김백민 교수가 강조하는 바는 어떤 기후위기 시나리오든 인간의 행동이 큰 변수이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에 따라 지구의 앞날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 현재, 이곳에서 실천 가능한 일들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제로웨이스트의 핵심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만든 쓰레기는 재활용하는 것.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 못지않게 있는 물건을 재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독일 사람들처럼 소비에 죄책감을 갖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노력은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후위기 극복에는 탄소 배출 감량이 중요해서 전기 사용을 줄여야 하는데, 전자제품 없으면 사는 한국인인지라 요즘 고민이 부분이다. 스마트폰은 덜 쓰고 살아도 전자책 단말기는 필수템이어서 그렇. 종이책도 펄프 나무를 베어 만드는 데다 보관과 운송에 탄소자원이 소비되기 때문에 친환경과 거리가 있다. 그래도 내 나름 실천 가능한 절충안을 찾았다. 전자책 단말기 배터리를 아껴서 충전 횟수를 줄이고 종이책은 꼭 읽을 책만 사서 오래 보관하는 것이다. (전자책 단말기 전원을 하루에도 몇 번씩 껐다 켜는 것보다 슬립모드로 전환해두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책 한 권을 읽을 때도 지구와 나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면 마음도 뿌듯고, 작은 실천이 쌓여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으니까. 이렇게 오늘도 제로웨이스트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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