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겁고 걸리적 거리지만 묘한 매력
누군가의 인간적인 빈틈을 봤을 때 그 사람에게 호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결점은 정말 결점인걸까?
누군가의 허술한 빈틈이 사랑스럽듯,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결점도 내 삶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추억들이 많다.
학교 가려고 나왔는데 실내화 가방 안 가져와서 다시 집에 뛰어 들어가고,
준비물 안 챙겨서 친구에게 빌리고,대학교까지 계속 됐다.
걸어 다니지 않았다. 이런 이유들로 늘 뛰어다녀야만 했다.
이런 추억은 주의 집중력이 약하고 정리 정돈에 취약한 결점 덕분에 만들어졌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드디어 달라졌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고도의 에너지를 쏟아 집중하고 기억했다.
그렇게 '사회적인 나'를 만들어 갔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본성으로 돌아왔다.
종종 성인 ADHD를 의심하며 살아간다.
피해를 내가 보는 시스템이므로, 기꺼이 산만하게 지낸다.
설거지하려고 씽크대 근처갔다가 널부러져 있는 잡다한 물건이 보여 정리하고 세탁실 문이 열려 있어서 1시간 전에 끝난 세탁물을 건조기에 넣는다.
커피 생각이 나서 스틱커피를 타다가 정수기 옆 설거지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설거지를 한다. 다 마친 뒤 식어있는 커피를 마신다.
이런 것들이 바로 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주의가 산만하여 띄엄띄엄 속도도 느리다.
일할 때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버텼지만
지금처럼 시간이 무한정 주어진 날들은 지내기가 정말 어렵다.
늘어지고, 괜히 돌아다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하루가 지나면
스스로가 못나 보이고, 자괴감이 든다.
그래서 플래너를 쓰고 모임을 가고 공부를 배치하며 스스로
나를 적당히 조이는 방법을 만들어 둔다.
크게 달라지지는 않아도 그 결점이 나를 조금은 발전적으로 살게 한다.
작년 보다 올 해가 조금 나아진 것, 지난 주 보다 이번 주가 조금 나아진 것 같으면 족하다.
늘 나아지는 것도 사실 아니긴 하지만.... 눈물이.. 난다.
결점. 버겁고 걸리적 거리는데, 또 이것 때문에 묘하게 하루가 굴러간다.
묘하게 나를 버티게 하고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