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벤틀리, <기차의 꿈>
삶의 맨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온갖 기술과 제도의 환경으로부터 둘러싸여 있습니다. 기술은 편리함을 가져다주고 제도는 안전함을 보장해 주죠. 하지만 때로 편리함의 기술은 단지 편리함만을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제도 또한 마찬가지죠. 단지 안전하게 우리를 보호하는데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때로 우리를 억압하기도 하고 때론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언제나 두 얼굴이 있습니다. 인간의 문명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연 또한 두 얼굴을 가집니다. 햇빛은 따스하지만 그림자를 만들고, 비는 생명을 키우지만 반대로 앗아가기도 합니다. 길들여진 동물은 우릴 지켜주지만, 야생의 동물은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가요.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양면의 얼굴이 존재합니다. 아니, 인간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도 심오한 존재입니다. 어떤 개념이나 논리로 설명하더라도, 그것은 전체가 아닌 부분, 부피가 아닌 일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삶은 '이야기'로 표현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 또한 부분이나 일면일 뿐이겠지만, 개념이나 논리보다는 입체적인 부피와 복잡한 다면을 내포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가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이야기들 중에는 단순히 재미나 쾌감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오락'에 가까운 것들도 있지만, - 요즘의 대중적 이야기들은 대개 이 지점을 향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그보다는 좀 더 인간과 세상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그 복잡하고 다층적인 내면을 꿰뚫어 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대개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문학 작품들은 그런 진실에 가닿는 나름의 성취를 담고 있기에, '고전'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중에는 몇 천년이 지나서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에게 남아있는 이야기들도 있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합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기술로 무장되어 있는 문명의 세상은 본래도 심오한 삶의 모습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놓죠. 아니 어찌 보면 복잡하게 한다기보다는, 인간과 삶의 진실을 왜곡하거나 드러나지 못하도록 가리기도, 억압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유행처럼 번지는 '나 자신으로 살기'라는 언명도, 그런 환경의 질서가 나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삶의 진실은 어떤 모습일까요. 인간의 맨 얼굴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진실'이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하나'의 진실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운 '어떤 모습'을, 우리는 상상하고 그려볼 수 있는 있을 것입니다. 이왕이면 '이야기'의 형태로 말입니다.
<기차의 꿈>이라는 영화는, 그런 세상과 인간의 진실에 깊숙이 다가가(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영화입니다. 별다른 줄거리는 없습니다. 그저 20세기 초 산업이 부흥하던 미국의 서부에서 고아로 태어난 한 남자가, 기찻길을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를 벌목하면서 한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줄거리의 전부입니다. 그 사람의 단순한 인생에는, 우리가 영화에서 기대하는 스펙터클한 사건이나 긴박감 넘치는 갈등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상적인 하루하루가 이어질 뿐입니다.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며 가정도 이루기도 합니다. 행복한 일상도 경험하고 불행의 우연도 맞닥드립니다. 그런 것들은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가는 일들이지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 사람의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상을 통해서, 인간과 삶, 자연과 문명의 진실을 꿰뚫어 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맨 얼굴을 마주합니다. 그 맨 얼굴이 어떤 모습인지는, 아마도 보는 이마다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그것은 아름답기도, 혹은 처참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 또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삶의 다면적이고 두터운 내면, 그 심오함은 단순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닐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 심오함을 드러내는데 자신만의 성취를 이루어내고 구현해 내는 탁월하고도 놀라운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예술이란 것이, 이야기라는 환상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납득하게 됩니다. 이런 심오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삶과 인간, 자연과 문명의 맨 얼굴을 잠깐이나마 스쳐가듯 볼 수 있으니까요.
이 영화를 보고 나서의 충격은 실로 거대한 것이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저 예고편의 인상만으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때문이었는지 영화를 보고 나서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내가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이 영화의 인상을 며칠이 지나 다시 떠올려봐도, 이 영화가 본 삶의 맨 얼굴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내가 본 삶의 맨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아채기 어려웠습니다. 단지, 나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무언가를 보았고, 그것이 어쩌면 삶의 진실에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강렬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을 뿐입니다.
영화는 원작 소설에 기반합니다. 원작은 얼마 전에 번역되어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준 충격이 이러한데, 원작을 읽어보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영화가 이 정도면, 더 깊은 언어를 가지고 있는 문학은 또 어떤 진실을 더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다만, 자칫 감상을 망칠까 너무 기대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소설을 읽어보게 되면, 또 소개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 영화를 추천드립니다. 추천은 드리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저처럼, 별 기대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우연히 시간 때우기 위해 보듯, 그렇게 무심히 볼 것을 권유드립니다.
- 감독: 클린트 벤틀리
- 각본: 클린트 벤틀리 & 그레그 퀘다르
- 출연: 조엘 에저튼 외
- 원작: 데니스 존슨, 『기차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