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지금의 나는 어렸을 때 소원했던 일을 하고 있다. 회사에 얽매여 있지 않다. 창작과 모임 형성을 통해 창조적인 일을 한다. 사업을 기반으로 예술 사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크리스천 창작자를 위해 문화 예배를 세우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얼마 없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 복을 받은 사람이다. 일복을 누리는 지금, 광야에서 얻을 수 있는 믿음의 반석에 감사하고 순종할 만큼 성장했다. 그 성장의 발걸음으로 본격적으로 이끈 시점은 출판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이 글은 출판사의 결단부터, 순종으로 나아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고 계시는지 담은 내용이다.
디자인학과는 4학년이 되면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어느 때보다 바쁜 시기를 보낸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서는 5가지 전공 수업 중 2가지를 선택해 졸업 작품으로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래픽 디자인(포스터와 굿즈), 브랜드 디자인(로고와 애플리케이션), 북 디자인(책 제작), 미디어 디자인(영상과 모션 작품), 웹 디자인(홈페이지와 모바일)였다. 디자인 학부 내내 내가 선택했던 전공은 그래픽과 브랜드이었다. 영상과 웹은 관심이 없고, 북 디자인은 진작에 열외 시켰다. 3학년 때 들었던 북디자인이 좋은 기억으로 끝나지 않아서였다. 그 수업에서 느낀 북 디자인의 인상은 매우 꼼꼼하고 세밀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런 인상을 심어준 데는 담당 교수님의 역할이 한 몫했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압박을 가했던 깐깐한 교수님의 지도로 학생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자유롭고 유연한 작업이 좋았고, 북 디자인 수업에서 받은 인상으로 그 길은 나와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취업 분야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더랬다.
"책 만드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지."
단호하게 정했던 결심과 정 반대로 현재 책 만드는 일은 나의 생업이다. 그것도 사명을 바탕으로 전심으로 일하고 있다. 책 만드는 일을 안 할 것이라고 다짐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스스로가 우습다. 나를 잘 안다고 여기는 그 마음이 얼마나 불완전한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결단을 움켜잡고 앞길을 전전긍긍하는 우리의 모습이 구슬프기도 하다. 동시에 하나님은 얼마나 완전하신가를 묵상하게 된다. 나보다 나를 온전하게 잘 아시는 전능자가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평안이다.
책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된 시점은 실무를 접하면 서다. 졸업 후 작은 회사에 입사했다. 규모가 있는 곳은 체계적인 시스템과 선임을 통해 업무를 많이 배울 수 있고, 규모가 작은 곳은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고 사업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회사에 오래 다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주체적인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꿈꿨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첫 번째로 지원한 회사에 바로 합격했다. 내가 생각했던 연봉, 거리, 업무의 최소한의 기준이 충족 됐기에, 빠르게 입사를 결심했다.
그 회사는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을 하는 곳이었다. 대표님 전문 강사였고, 대학과 기관에서 규모 있는 워크숍이나 캠프 등 교육 의뢰가 많이 왔다. 작은 회사는 업무가 정확하게 나눠지지 않는다. 사업이 존속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같이 분담해야 한다. 대표님은 교육을 하러 사무실에 없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내 할 일을 알아서 찾거나 기획부터 디자인과 제작까지 주도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첫 회사에서 경험했던 다양한 업무와 교육 진행은 잘 맞는 편이었고, 강의와 교육 업무에 흥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어느 날 대표님은 책을 써야겠다고 말했다. 예전에 출판사 등록을 해 두었다고, 직접 출판을 진행하자고 말이다. 대표님은 원고를 써서 주셨고, 나는 북 디자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참고 책을 찾아보면서 작업했다. 다행히 결과물이 괜찮았다. 내 손에 들려진 두툼한 종이 뭉치, 표지부터 모든 내용물에 내 손길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어떤 작업보다 남다른 성취감을 주었다. 그 뿌듯함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에 천천히 그리고 깊숙이 스며들었다. 점점 책 만드는 일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원래도 책을 좋아했었다. 어릴 때부터 나의 놀이터는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서 수많은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고, 그 세계를 돌아다니며 꿈을 키웠다. 내가 좋아하던 것을 손수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자극이 되었고, 그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된 부분은 새로운 쾌감을 일으켰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진로의 대한 고민 속 흩어졌던 에너지가 한 곳으로 집결되고 있는 기분이었다. 마음에 응축되는 에너지는 열정이라는 폭탄을 만들어 냈다. 폭탄이 터지기 위해 작은 불꽃이 있어야 한다. 나는 이 불꽃이 소명이라고 여긴다. 다른 의미로는 ‘그 일을 왜 해야 하는가’의 답이다. 단순히 ‘좋아서’ 이상의 무엇인가를 얻고 싶은 갈망이 내 안에서 들끓었다. 그때 나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사명을 찾기 원했던 것 같다. 더 큰 의미로는 인생의 목적을 얻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나님은 그런 나에게 작은 불씨 하나를 내려 주셨다.
혼자 서점을 간 날이었다. 어떤 책이 인기 있고, 어떤 주제들을 담고 있는지 매대를 살피며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늘 도는 코스처럼 기독교 코너를 찾았다. 메인 무대 뒤편에 놓인 작은 공간 같은 규모에 저자가 유명한 기독교 서적 몇 권만 쌓여 있었다. 늘 봐왔던 평범한 풍경, 그런데 내 마음에 왠지 모르는 먹먹함이 찾아왔다.
'이 시대 문화 안에서 복음은 어떤 위치를 지키고 있을까?' 스스로를 사랑하고, 내가 선택하는 길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 책들이 환호받는 곳에서 복음은 한 편의 구석 자리만 고요히 지키고 있는 듯했다. '문화와 복음' 두 가지 키워드가 내 마음에 안착 됐다. 일의 대한 소명의 불씨가 켜졌고, 동시에 흥미가 생기고 있던 출판이라는 직업적 수단에 그 에너지가 담겼다.
"책을 만들어야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출판을 하고 싶다."
성경적인 가치관, 복음의 영향력이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었다. 인본주의와 절대평가의 끝에 찾아오는 허무와 박탈감에 빠져 영혼의 자괴감을 겪는 이들에게 절대적인 빛을 선사하고 싶었다. 나는 그날의 서점에서 언젠가는 개인 출판을 하고자 하는 결심이 일었다.
가야 할 방향과 목표가 생기니 첫 회사에서 이제 나와야 할 때라는 것이 느껴졌다. 2년 넘게 다니면서 그 회사에서 배워할 것은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를 하고 이직을 알아볼 때까지 출판사 일을 지금 당장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눈에 들어오는 적당한 회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2달 정도 다녔을까, 디자이너로 입사했는데 행사 기획과 제안서 제작만 하고 있는 상황에 회의감이 들어 다시 퇴사했다. 그제야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출판의 열정이 이미 시작됐음을 알았다. 다른 업무를 해봤자 내 마음에 갈급함만 증폭시킬 것이란 걸 말이다. 출판사 디자이너로 다시 이직하기 위해 두 번째 회사를 빠르게 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