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열정과 달란트, 그 중심의 사명
사람은 누구나 창조적 열망을 갖고 태어난다. 이 창조성은 더욱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게 만들고, 현재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해주는 성장 동력이 되어 준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기어 다니던 아기가 걸음마를 떼고, 옹알거리던 입이 말을 할 수 있게 되듯 그 뜻을 생각할 때면 과거와 달라졌다는 변화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성장에는 변화를 내포한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성장과 변화를 겪는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한 그 능력의 에너지가 모든 존재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 접점이 잘 연결되었을 때 소명은 창작자의 바른 사명으로 이어진다. 창작자에겐 작품이 복음을 전하는 강력한 무기다.
창작은 창작자만의 고유한 가치를 품고 있기 때문에 그 무기는 매력적이면서 위협적인 칼이다.
전문가가 칼을 쥐면 멋진 작품을 만들지만, 아이가 칼을 쥐면 자신을 상처 입힐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필요한 영역의 단련을 통해서
우리가 그 무기를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하시도록 만드신다.
공들인 칼날이 자기 심장을 찌르지 않도록 말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복음의 열정이 자리 잡는다. 다만 그 사명을 불태울 수 있는 장작의 개수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다. 누군가는 충분히 잘 준비된 장작에 성령의 기름을 쏟아붓는다. 불타오르는 사명감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예수님을 전한다. 이들은 어디라도 부르신 곳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을 하며 선교적인 삶을 살아간다. 꼭 해외 선교를 나가지 않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그 열정을 쏟아낸다. 그러나 선교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은 기독교인 중 10%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수의 기독교인들은 선교를 부담스러워한다. 그들은 타인을 챙길 여유가 없다고 말하며, 먼저 자기 삶부터 축복을 내려주시길 간구한다. 우리가 흔히 부모님에게 ‘성공해서 효도할게요.’라고 말하던 것과 같은 조건을 하나님께도 걸어둔다. 더불어 죽고 나서 구원도 받아야 하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아예 외면하지는 못한다. 신앙적인 양심의 가책으로 전도를 마치 미루고 미루다 처리하는 여름 방학 숙제 같이 여기고 있다. 또는 내 기도가 응답받기 위한 거래의 조건으로 전도나 교회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들의 마음에는 성령의 불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 그저 몇 개의 성냥개비뿐이다. 성냥개비의 불꽃처럼 금세 타올랐다 식어버리는 짧은 회심으로 신앙을 연명해 간다. 그리고 다시 복음이 무력화된 일상을 살아간다. 창작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이들은 어떨까?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방법이 조금 더 특별하다고 여기며 충분한 열정이 있다고 자부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때로 교회 내에서 이런 나눔을 듣는다.
“하나님이 마음 주셔서 이 일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복음을 위해 이 일로 섬기고 싶어요.”
이런 결단을 들은 청중들은 ‘정말 멋지네요! 대단합니다.’라고 답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함인지, 자신을 스스로 특별하게 여겨 어깨를 으쓱하기 위함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자. 나의 비전과 방법이 더 특별하다고 여기는가? 그래서 사람들에게 받는 인정과 박수를 즐거워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영광에서 내 몫을 챙기고 있다. 이미 복음보다 자존적인 성공에 더 집중된 삶이다. 전도에는 높고 낮음을 나누는 경중이 없다. 우리는 그저 복음이라는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에만 무게 추를 달아야 한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선하신 하나님이 내 삶을 온전히 인도하심 같이, 나에게 가장 알맞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기름을 부어주신다.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분이 하시는 일에 연약한 우리를 초대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 나의 행함을 특별하지 않게 여길 수 있다. 그것이 어떤 대단한 창작이라도 말이다.
어떤 일에 있어서 주체적으로 행동하게 해주는 것은 역할의 이동에 있다.
학생일 때와 선생일 때가 다르고, 자식일 때와 부모일 때 역할이 다른 것과 같다. 만일 여러분이 교회의 목사, 전도사, 예배인도자라고 한다면 어떨까? 결단코 무덤덤하게 사역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 것은 적지 않은 책임감이 따른다. 그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 자체가 큰 결단이 필요할 수가 있다. 부르심에 따라 자발적으로 신앙의 주체성을 잡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주신다. 그렇다고 모든 성도가 목사, 전도사, 예배 인도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규모가 있는 교회들은 공동체와 모임을 쪼개어 성도들에게 크고 작은 사역을 함께 하도록 콜링 한다. 이러한 제도들이 장점도 있지만, 단점은 자발적인 헌신의 기쁨과 즐거움을 반감시키며 가중되는 부담감이 사역에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할 방안으로 개인의 달란트를 존중하고 끌어내는 길이 있다. 그중 크리스천의 창작 활동은 특별한 매력을 지니는 것이다.
복음을 담은 창작은 새로운 측면으로 신앙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길러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개인의 상황과 특성에 따라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창작 활동을 통해 즐겁게 작업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진행하는 일이 순전히 ‘나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할 때 주체적인 동기 부여가 강해진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토대로 스스로 진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창작 활동’은 그래서 매력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창작은 이에 더해 신앙의 주체성을 스스로 찾아가는 단계를 마련해주는 힘이 있다. 동시에 올바른 복음 창작은 나에게 주어진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의 섭리에서 인도되는 과정을 통해 은혜를 경험하고 변화되어갈 수 있다. 그렇게 믿음의 방향이 바로 세워지는 사람은 신앙의 주체성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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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은 창조적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주체적인 창작을 생각하고 있다.
당신에게 꿈을 주시고, 도전적인 길을 가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
최고의 예술가이신 하나님의 일에 초대된 기쁨을 마음껏 누려보자.
내게 주신 재능을 경작하며 성실한 청지기가 될 때 멋진 일들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창조적 열정과 달란트, 그 중심의 사명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당신은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그리고 그 꿈을 주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