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는 세상으로부터 추방이다. 위험인물을 전 시민에 의한 비밀투표로 국외로 추방하던 고대 그리스의 도편추방(陶片追放, ostracism)만 하더라도 그 기간이 10년이었다. 그러나 유배는 그 기간이 아예 없다.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고 예측 불가능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죽음뿐이었다. 그러기에 유배는 공포요 절망 그 자체였다.
유배인은 세상으로 부터 버림받은 자다. 아무도 그를 거들어 주지 않는다. 모두가 그를 저 버린다. 이제 그는 완전히 고립된 채 남겨지고 배척받는다. 그래서 더러 자기 처지를 하소연하곤 했다. 미인곡(美人曲)이 그 증거들이다.
중국의 굴원(屈原)이 유배 때 썼던 서정시 ‘이소(離騷)’가 그 대표다. 이 때문에 굴원은 한 번 용서를 받으나 참소를 받아 다시 유배된다. 이에 절망하여 그는 ‘회사(懷沙)의 부(賦)’로 하소연을 또 남기고 돌을 안고 강에 몸을 던진다. 자살이다. 유명한 용선(龍船)축제는 굴원의 유체를 찾던 일에서 기원한다.
이렇듯 하소연은 눈물겹지만 그럼에도 냉정한 세상은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면 어떠했겠는가? 다른 무엇보다 유배라는 공포와 절망을 잘 견뎌 내는 일이 급선무임을 일깨워 준다. 그 절망을 잘 견디지 못하면 죽음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18년의 강진 유배를 잘 견뎌 냈지만, 형인 정약전(丁若銓)은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유배지 흑산도에서 술병으로 죽는다.
음모와 배신의 냄새가 요동친다. 분노와 우울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런 가운데서 잘 견딘 유배인이 있는가하면 그러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그것은 내공의 차이였다. 이를 회복력(resilience)이라고 한다. 즉 역경을 이겨내는 마음의 근력을 말한다.
물체마다 탄성이 다르듯 사람에 따라 회복력이 다르다. 다산은 근력이 무척 강했던 사람이다. 이런 회복력은 어디에서 왔던 것일까? 유배지에서 추사(秋史)는 10개의 벼루에 구멍을 내고, 붓 1000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만큼 글씨 쓰기에 몰입했다. 그런가하면 이익(李瀷)은 거문고에, 송상인(宋象仁)은 바둑에 그리고 다산은 5백 여권의 책을 낼 만큼 글쓰기에 몰입했다. 절망적 상황에서 그들은 몰입을 통해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겪는 역경과 좌절도 유배인들 못지않다. 그러기에 박완서 선생은 자신의 시 ‘유배’에서 “내 조상은 역신(逆臣)이던가/끝이 없는 유배”라고 했다. 맞다. 우리 인생 자체가 ‘끝이 없는 유배’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선생은 같은 시에 “나는 책상 하나 안고 살아왔다”고 했다. 그 분 역시 몰입했던 것이다.
몰입은 자발적인 헌신이다. 엄청난 노동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좌절이 클 때, 그래서 초조와 불면의 나날을 보낼 때 다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몰입이다. 몰입할수록 회복력이 강해짐을 유배인들은 증거한다.
한때 유배인이던 빅토르 위고도 “외출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으려고 옷들을 자물쇠로 채웠으며 마치 감옥 속에서처럼 소설에 몰입했다. 식사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상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이 ‘파리의 노트르담’이다.
험난하고 부박한 우리 시대를 어떻게 살아 갈 것인지 매일 매일이 버겁고 무기력하다. 그러나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혼신을 다한 몰입을 통해 인간 긍정의 모습을 보여준 유배인들을 생각한다면 우리도 회복력을 키워 잘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네 삶의 온갖 어리석음을 건강하게 비웃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유배가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