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세이신 연세대 김형석 명예 교수는 최근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절’을 ‘65세에서 75세까지’라고 했다. 인간적으로 학문적으로 가장 성숙하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일을 좋아하는 것이 그 분의 건강비결이라 했다. 50대 후반에 시작한 수영을 30년 넘도록 한 덕분에 지금도 곳곳을 다니며 강의하고, 글을 쓰고 있다고 했으니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하면 ‘눈 먼 자들의 도시’로 잘 알려진 스페인의 사라마구(Jose Saramago)는 60세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80세에 이르러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김형석 교수가 가르치고 글 쓰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퇴임 후에도 그 연장선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절’을 맞이했지만 사라마구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기계공과 금속세공인을 거쳐 출판사에서 일을 배우면서 글을 쓰고 60세에 쓴 장편소설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절’을 맞이했다는 차이가 있다.
다산 정약용은 노인육쾌(老人六快)라 하여 노인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 6가지를 들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붓 가는 대로 마구 쓰는 재미에 퇴고할 필요 없어 좋은 즐거움이라고 했는데 사라마구는 문장부호는 마침표와 쉼표뿐 직·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고 그야말로 붓 가는대로 마구 써서 노인육쾌를 제대로 즐긴 사람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사라마구는 나이를 먹으면서 저절로 ‘아름답고 좋은 시절’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제주유배인 유언호(兪彦鎬, 1730~ 1796년)가 관심을 끈다.
유언호는 1761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및 홍문관의 직책을 역임하다가 영조와의 갈등으로 남해와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했지만 1876년 정조가 즉위하자 중용되어 요직을 거치면서 우의정까지 오른다. 이후 경종과 희빈 장씨를 옹호하고 영조를 비판한 남인 조덕린(趙德隣)이 복관되자 이를 공격했다가 정조의 탕평을 부정한다는 죄로 1789년 제주도에 유배된다.
제주도에서 유언호는 아들에게 편지로 ‘내가 육십일 세이니 어느새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구나. 생각해보면 옛날 어릴 적에는 이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을 보면 바싹 마르고 검버섯이 핀 늙은이로 알았건마는 세월이 흘러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하지만 그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팔팔한 소년의 마음뿐이다.’라며 소회를 밝힌다.
그리고는 ‘남들 눈으로 보면 나이가 육십을 넘겼고 지위가 정승에 올랐으므로, 나이에도 벼슬에도 아쉬울 것이 없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내 스스로 겪어 온 일들을 점검해 보노라니, 엉성하고 거칠기가 이보다 심할 수가 없구나. 평생토록 궁색하고 비천하게 지내다 생을 마친 자들과 견주어보아 낫지 못하며 좋고 나쁘고를 구분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한다. 남들은 모두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러워하지만 정작 자신은 지나온 삶이 몹시도 허무했던 모양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내가 지어야 할 농사를 내가 지어서 내 삶을 보살피고, 내가 가진 책을 내가 읽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하며 내 인생을 마치려 한다(吾耕吾稼 以養吾生 吾讀吾書 以從吾好 吾適吾意 以終吾世)’고 포부를 밝힌다. 더 늦기 전에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절’을 제대로 맞이하겠다는 각오이다. 권력도 부귀도 미망일 뿐이다. 더 늦기 전에 나를 찾고 나를 보살피겠다는 것이다. 제주도 유배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얻지 못할 각오였다. 이처럼 계기를 잘 활용해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절’을 맞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