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까?

by 양진건



최근의 제 독서 경향은 평전과 시집입니다. 제가 아끼는 평전 가운데 하나가 도미니크 보나가 쓴 「로맹 가리」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의 드라마틱한 생애를 고스란히 담은 이 책으로 작가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의 생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눈여겨보게 됩니다. 꿈꾸는 현실주의자로 한 시대를 풍미한 로맹 가리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시를 읽는 일은 더 좋습니다. 이를 굳이 나이 탓이라 할 순 없어도 젊을 때 못보던 것을 보고 느끼게 됩니다. 요즘은 김춘수의 시집 「쉰한 편의 비가(悲歌)」를 되풀이 읽곤 합니다. 그래서 아내와 사별 후, 기도 폐색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을 하다 죽은 노시인의 고독을 실감합니다.


언젠가 모 신문 칼럼에서 서울대 학생들에게 부모가 언제 죽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63세라며 그 이유가 은퇴 퇴직금을 남겨주고 바로 죽는 게 좋기 때문이라는 것이었고, 서강대 교수가 대학생들에게 ‘아버지한테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돈밖에 없다’는 답이 40% 이상 나왔다는 것을 읽고 적잖게 당황했었습니다.


당황한 것은 비단만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 칼럼을 읽은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같습니다. 내용이 대단해서보다 어쩌면 우리가 애써 감추고 싶은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선 다만 저주일 뿐입니다. 그래서 로맹 가리나 혹은 헤밍웨이처럼 총만 마련할 수 있다면 우울한 일이긴 하지만 자살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그게 아니면 호흡곤란 증상과 뇌 손상으로 긴 투병을 하다 외롭게 죽은 노시인처럼 그 길을 선택하실건지요?


잘 쓴 책은 아니지만 재미삼아 마크 엘리엇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평전도 읽어봤습니다. B급 영화배우에 불과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감독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대단했습니다. 그는 권총 자살도, 외로운 투병생활도 하지 않는 89세의 현역으로 현재도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노인들더러 크린트 이스트우드를 본받아 좀더 노력을 하라고 해야건가요? 아니면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처럼 죽을때까지 가족을 위해 이 한 몸을 쥐어짜는 고귀한 아버지가 되라고 건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대한민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외면받는 덕수는 나올지 모르나 환대받는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나오지 못합니다. 노인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방치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일상이 된 지 오래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늙어간다는 것은 곧 죽음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돈이 있는 삶이라고 편안할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조사에서 보듯 63세가 되면 돈은 물려주고 죽어주기만을 바라는 자식들의 눈총을 견뎌야 하는 긴 악몽의 시간을 맞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권총을 구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산송장 취급을 받아서도 안 되겠고, 오로지 메아리 없는 외침 같은 노인복지만을 학수고대할 수밖에 없는 이런 현실에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방법은 선한 의지를 갖는 노인들끼리 분노하고, 연대할 수밖엔 없다고 봅니다. 88세의 이시돌 목장의 맥그린치 신부님은 노인보호와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위해 요양원과 호스피스 병원을 건립했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헌신입니다. 이런 노인들의 선한 연대가, 선한 싸움이 크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요양원과 호스피스 병원 이전부터 다양한 노인복지 프로그램들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인 스스로의 끊임없는 자기연찬도 필요합니다. 중국의 어느 학자는 노인의 자기연찬으로 태극권과 독서를 권했는데 86세인 당신은 1년에 200권의 책을 읽고 태극권으로 50대의 체력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을 다른 노인들과 함께 도모한다는 것입니다.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연대와 싸움을 통해 노인 스스로가 노인이 외면받지 않는 나라, 노인이 방치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 길밖엔 없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그런 노인 연대와 싸움을 도와줄 수 있는 후보를 밀어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