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세월의 휴식

by 양진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시작된 분노와 슬픔 때문에 삼,사개월은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하던 일을 즉시 내팽개치고 서둘러 시골의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쉴 새 없이 자신을 몰아부치는 사람치고 온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을 알면서도는 세월호 사태가 터지고 나서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견딜 수 없어 싸우듯 거의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시골 작업실에서 처음 나를 맞아준 것은 특유의 바람이었습니다. 웃자란 풀들로 뒤덮인 마당에 들어서자 문득 바람이 꿩 한 마리를 후더덕 공중에 밀어 올렸습니다. 순간,는 빈광주리 같은 가슴이 되어 말을 잊었습니다. 마당 한가운데 꿩이 자리를 틀고 있었다니. 아, 그것이 시골이었습니다. 고요하고 따뜻하고 외로웠습니다.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한 뒤, 짙은 차를 만들고 김수영 시집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는 어떤 나무 아래 있는지, 내 하늘과 내 땅이 보이고가 누구를 기다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김수영의 시처럼 ‘바람도 불지 않는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듯 나의 마음에서 수없이 떨어지는 휴식의 열매’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소파에 기댄 채 축 늘어져 잠 속으로 잠 속으로 서서히 침몰해갔습니다. 세월호 사태 이후 오랜만의 낮잠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왠지 미안함이 들었습니다.


오후에는 부지런히 마당의 풀을 깎았습니다. 다리가 불편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예초기를 몰았습니다. 두어 시간에 풀들이 정리되고 마당은 더욱 넓어 졌습니다. 숨은 턱에 차오르고 온몸은 땀범벅이 되었습니다.


이때 먹는 컵라면은 가히 일품입니다. 저는 라면을 거의 먹지 않습니다. 편벽되지 않고 무엇이든 잘 먹지만 라면에는 손을 대지 않는 편입니다. 젊은 시절 자취할때의 기억때문 일겁니다. 컵라면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예외였습니다. 땀 흘린 덕인지 면발 한 가닥, 국물 한 모금도 아까웠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땀 흘린 탓만은 아니었습니다. 마당의 감나무 아래서 컵라면만을 먹기보다는 사실 햇살밖엔 아무 자취도 없는 시골의 고요를 먹고 있었고, 그 어떤 절실함을 먹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라면이 아니라 절실함이었습니다.


작업실에만 오면 왜 그렇게 절실해지는가. 그것은 고독이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골의 사방은 고요뿐입니다. 가끔 새들이 다녀가지만 그것들이 사라지면 무량의 시간들도 사라집니다. 베어진 풀들을 밟을 때마다 고요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는 더욱 고요의 깊은 속으로 들어갑니다.


글쓰기에 몰두하다가 가끔 창 너머 멀리 내다보지만 시골의 길들은 여전히 멀리까지 비어있고 길들은 또 저들마다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 길로 문득 세월호 아이들 두 어 명이 밝은 웃음으로 찾아올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한 손에 꽃을 들고 흰 이를 드러내며 찾아올지도 모를 그 아이들. 그러나 이제 그 아이들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 비어 있는 길 위로 시골의 시간들은 하루 종일 침묵의 깊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로 당당히 올거라 믿습니다.


어느덧 어둠이 밀려오자 방금까지도 마당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바람들은 골목을 빠져나가 어둠과 한 몸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낮잠 자고, 풀 베고, 글 쓰고 시골의 하루가 그렇게 끝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화벨이 한동안 울렸지만 받지 않고 버려둔 채 길게 허리를 펴고 찻잔만 들고 창밖의 어둠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이제쯤 세월호 아이들을 제 마음에서 보낼 때도 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건강해져야, 제가 바로 서야 그 아이들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잘 가라, 내 아이들. 결코 잊지 않으마.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그동안 피곤했던 제 심신이 찬찬히 가라앉았습니다. 아픈 세월의 휴식 속에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는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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