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나스(Salinas). 캘리포니아 포도와 딸기의 산지로 빼어난 시골 마을이다. 산타바바라에서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샌프란시스코 북쪽 나파밸리까지 이어지는 101번 도로는 야생말인 듯 거칠게 달려야 제 맛이다. 그 위를 달리며 이글거리는 태양의 풍부한 일조량으로 당도가 잔뜩 높아진 생포도로 빚어낸 나파밸리 산 샤토 몽텔레나(Ch. Montelena)의 샤토네이 백포도주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약간은 재미없는 삶이다.
그러나 살리나스를 찾는 이유가 ‘분노의 포도’를 쓴 노벨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과 단 3편의 영화를 남기고 24살에 세상을 버린 영화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 때문이라면 그깟 포도주쯤 기억 못한다한들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낼 테다.
살리나스. 존 스타인벡의 고향으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소설이 원작이었던 영화 ‘에덴의 동쪽’으로 유명해진 제임스 딘이 은색 포르쉐를 몰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곳도 그곳이다. 1930년대 텍사스에서 캐나다 국경에 이르는 미국 전역을 배경으로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을 ‘출애굽기’의 구성을 본떠 묘사한 대작 ‘분노의 포도’ 무대 역시 살리나스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조용히 살리나스를 찾는다.
나도 그랬다. 올드타운 살리나스의 메인 스트리트에 갔더니 내쇼날 스타인벡 센터(National Steinbeck Center)가 있었다. 존 스타인벡은 살리나스의 불멸의 자존심이었다. 자존심. 정녕 그런 자존심을 또 만나고 싶다면 그리스 크레타 섬을 꼭 찾을 일이다.
그리스는 여행하기 힘든 곳이다. 더욱이 크레타는 땅거미가 내려앉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느닷없이 울고 싶어지는 곳이다. 그러나 거기에 크레타의 자존심 ‘그리스인 조르바’의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가 있다.
그의 고향인 시골 마을 이라클리온의 미나젤로 호텔에 짐을 풀고 우선 찾은 곳이 작가의 묘다. 가는 길에 엘레프테리아스 광장을 지나며 이라클리온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성곽 위에서 바다를 등지고 광장을 내려다보는 그의 전신 동상을 볼 수 있다. 이라클리온에서 그의 기념관이 있는 미르티아 마을까지 버스는 하루에 한 대뿐이다. 12시 15분. 그러나 1시가 넘어서야 나타난 버스 기사는 뚱한 표정으로 승객들을 맞는다.
그리스에서 돌아오는 대로 편지함을 뒤져보라. 나도 그랬다. 몰라도 그즈음이면 당신에게 그가 직접 손으로 써서 보낸 편지가 도착했을 것이다.
「앞날이 걱정된다고 했소? 난 어제 일은 어제로 끝내오. 내일 일을 미리 생각하지도 않소. 나한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뿐이오. 나는 늘 나에게 묻소. ‘자네 지금 뭐 하나? “‘자려고 하네.” “그럼 잘 자게.” “지금은 뭘 하는가?”, “일하고 있네.”, “‘열심히 하게.” “지금은 뭘 하고 있나?” “여자랑 키스하네.”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다른 건 모두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자네와 그 여자밖에 없는 걸세. 실컷 키스하게.” 마지막으로 부탁하는데, 행여 나하고 똑같이 살아보겠다는 생각일랑은 말게. 당신이 할 일은 당신 자신이 되는 일, 당신답게 사는 일뿐이니. 그럼 건투를 비오. 크레타에서, 알렉시스 조르바’」
가슴 속에 상처만 가득할 때, 그 상처야말로 좀체 치유되기 힘든 성질일 때, 그래서 상처에 무너졌지만 끝내 나를 일으켜 세우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자존심.
과연 제주도에도 그런 자존심은 있는가? 누구인가? 현기영 선생인가? 4·3사건을 작품화한 중편 ‘순이삼촌’을 발표함으로 문제작가로 주목을 받은 원로 현기영 선생. 아니면 '벼루 10개를 밑창내고 붓 1000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어' 추사체를 완성한 유배인 김정희인가? 이런 자존심을 만나볼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애월읍 어음1리의 "어음책마을"이다.
일에서나, 길에서나, 마음의 혼란에서나, 재빠른 나날의 핵심에 까지, 모든 일에서 극단에 까지 가고 싶을 때, 그럴 때 존 스타인벡이나 니코스 카잔차키스 같은, 현기영이나 추사 김정희같은 그런 든든한 자존심을 "어음책마을"에서 만날 수 있다면 아, 그래서 어음을 찾고, 제주도를 다시 찾고자 한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