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가 좋다. 막걸리 안주는 역시 김치다. 잘 익은 배추김치에다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는 호사는 젊은 시절에는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용돈이 궁색했던 젊은 시절, 튀김쪼가리에다 막걸리를 마실 때도 있었지만 물탄 생맥주가 주였다. 그러나 이즈음엔 막걸리가 우선이다.
아내를 따라 쇼핑을 가는 이유 중에 하나는 술매장에 들려 막걸리를 사는 재미때문이다. 매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가 전시되고 있어 고르기도 쉽지 않다. 복분자막걸리가 있는가 하면 더덕막걸리와 검은콩막걸리도 있고 놀랍게도 연꽃막걸리도 있다.
그런데 최근 TV에서 "막걸리는 전통주가 아니다"라는 프로를 보았다. 내가 마시는 막걸리 대부분이 일본식 주조방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저으기 놀랄 수 밖엔 없었다. 그렇다고 막걸리를 안마실 수는 없어 전통주조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애써 고르곤 한다.
내가 즐기는 양은 홀로 1병이다. 1병이면 적당한 대접으로 3잔이 나오며 그에 따른 배추김치 안주는 4번정도 집을거면 족하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번잡한 게 싫어 가급적 간단하게 술자리를 갖고자 하는 심사 때문이다. 물론 배는 적당히 고픈 상태가 안성맞춤이다.
늦은 밤까지 글을 쓰다보면 식구들은 모두 잠들어 있고 그럴때마다 왠지 외로워져 어김없이 나는 홀로 막걸리 잔을 기울인다. 늙어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마치 글쓰고 막걸리 마시는 일, 두 가지 뿐이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쓰고 또 막걸리를 마신다.
추사 김정희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막걸리를 많이 마셨던 것 같다. 그의 "우작(偶作)"이라는 시를 보면 "보리누룩으로 새로 빚은 막걸리 한 동이에 그들먹하구나(麥麯新醅酒一䲭)"라는 표현이 나온다. 귀양살이가 외롭기에 그도 막걸리를 외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대개 추사를 천재로만 알고 있지만 그러나 나는 막걸리에 취한 그런 인간적인 추사가 좋아서 대정에 "추사유배길"을 만들었다. 바라건대 그 길에서는 보리누룩으로 빚은 막걸리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늘 홀로였지만 그 길을 걸는 날만은 추사와 어울려 많은 사람들이 막걸리를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