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맨발뿐이겠는가

by 양진건



<맨발의 청춘>이라는 영화가 맨 처음 나온 것이 1964년이었습니다.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신분적 배경이 다른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다룬 멜로 영화습니다. 이후 같은 제목의 영화가 2 편 더 만들어졌고 또 2 편의 TV드라마도 만들어졌습니다.


1964년 같은 해에 <맨발로 뛰어라>라는 영화도 나왔는데 이 역시 신성일, 엄앵란 주연이었습니다. 역시 같은 제목의 TV드라마도 1 편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신성일과 엄앵란씨는 맨발을 무척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영화나 드라마의 맨발 시리즈가 인기를 얻은 것을 보면 우리 국민들도 어지간히 맨발을 좋아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 역시 맨발을 좋아합니다. 젊은 여성의 맨발을 보면 괜시리 마음이 바빠지는 것이나 살짝 내민 젖먹이의 앙증맞은 맨발을 깨물고 싶은 충동이야 어찌뿐이겠습니까. 그런데다 저는 한국 시단에서 가장 유니크한 시를 써내는 문태준의 시집 『맨발』의독자이기도 하고, 맨발로 즐겨 걷기까지 합니다.

잠을 설치거든 맨발로 걸어보라는 조언을 듣고 수목원 근처 살기때문에 용기를 내어 간혹 그렇게 걸어보곤 합니다. 정작 효과는 모르겠지만 건강에 좋다니 아내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가끔 해보는 것입니다.


어느 날, 맨발로 걷고 있는 저를 본 친구가 시덥잖은 표정으로 "꼭 타잔 같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신성일같다고 해야 하는데 그는 영화를 모르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아니면 맨발로 걷는 편에게 시종 눈총을 주는 제 아내가 엄앵란처럼 보이질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친구가 지나가자 방금 뭐라 하더냐고 아내가 묻기에 당신이 "제인 같다"고 하더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아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졸지에 수목원에 타잔과 제인이 출연한 셈이니까요.


그러니까 문제는 건강입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어찌 맨발뿐이겠습니까. 햇볕을 가린다고 마치 중세의 십자군처럼 누런 철가면 같은 것을 뒤집어쓴 용감한 우리의 아주머니들은 오늘도 수목원을, 올레길을, 오름을 맹렬하게 누비고 있습니다. 아웃도어를 걸친 아저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건강에 대한 바람은 거의 발악 수준입니다. 물구나무서기나 혹은 뒤로 걷는 것은 물론이고 호보(虎步)라고 호랑이 흉내를 내며 수 킬로를 기어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지경이니 맨발로 걷는 것쯤은 약과입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인들 할 태세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래야 하는 것일까요? 웰빙이라는 말로 포장은 하지만 건강관리가 추악한 욕망이 되어버린 지는 이미 오래입니다. 몬도가네 식의 보양식은 일상적인 먹거리가 되었고 요즘 유행하는 태반주사, 마늘주사, 신데렐라 주사, 백옥 주사 등 각종 주사 처방이야말로 그런 욕망의 단적인 예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둘러싸고 이런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돌았다는 것도 정말이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런 저런 주사맞으면 맨발의 청춘으로 회춘한다는 유혹을 누군들 뿌리치기 쉽겠습니까만 그래도 그게 아닙니다. 그렇게 되지도 않겠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헛된 짓을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건 한갓 미망(迷妄)일 뿐입니다.

건강은 해야 합니다. 물론 건강하게 늙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眞)이란 허공밖에 없다”는 다석 유영모선생 같은 분의 깨달음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일상의 욕심을 절제하는 일이야말로 건강하게 늙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쯤은 우리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실천을 못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노욕(老慾)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욕심을 절제하기 위해선 말년의 추사 김정희처럼 "하늘이여! 대저 나는 어떤 사람이란 말입니까?(天乎此何人斯)"라고 늘 자문해야 합니다. 이런 반성이 없으면 맨발로 걷기도, 요가도, 명상도 다 추악한 욕망뿐입니다. "맨발의 노욕"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만으로 살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귀하지 않습니까. 귀한 인생, 제대로 살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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