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짓을 덜하려면

by 양진건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자기중심의 생각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게 될 때 그것이 다름 아닌 아집(我執)일 텐데 제게 점점 그런 시간이 많아지니 큰일입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대정에서 9년간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시를 남겼지만 항상 대하던 단산(簞山)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한편도 쓰지 않았습니다. 제주의 여러 오름들과 달리 단산은 그 모양 생김이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추사체도 그 풍경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여겨질 정도입니다.


단 한편도 없다니 도저히 그럴 리가 없어서 저는 찾고 또 찾다가 추사의 <포사하기 위해 오대산에 오르다(曝史登五臺山)>라는 시를 단산에 대한 것이라고 고집하게 되었습니다. 아집이었죠.


굽어보니 온 길이 사뭇 가까워 / 俯看來路近

나도 몰래 들어왔네 아득한 이곳 / 不覺入幽冥

봉우리 반은 온통 하얀구름에 감겨있고 / 峯半全沈白

숲 끝은 아스라이 푸르게 물들어 있네 / 林端遠錯靑


이 시를 대정의 단산에 대해 쓴 것이라고 고집했던 이유는 이원조 제주목사가 엮은 『탐라지초』의 대정현 산천편에서 단산을 오대산(五臺山)이라고도 한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읽는 순간 박수를 쳤습니다. 사실 단산 아래서 9년을 살면서 추사의 감수성에 시 한편쯤은 능히 남겼을 만 하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니 아쉽게도 그 시는 단산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오대산이 그 오대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 시는 추사가 젊은 시절 포사관(曝史官)이 되어 강원도 오대산을 찾았을 때 쓴 것이었습니다.


포사관이란 사고에 있는 책을 꺼내 햇볕을 쬐며 바람을 통하게 하는, 거풍(擧風)시키는 일을 맡은 사람을 말합니다. 순간, 저는 실망했고 그냥 단산에 대한 시라고 고집부릴까도 생각했지만 포기를 했습니다.


자칫하다가 자기중심의 판단에 빠져 추사의 시를 제멋대로 해석할 뻔 했던 것입니다. 천하의 바보 같은 짓이었을 겁니다. 이런 바보짓을 되풀이 해서는 안될 텐데 걱정입니다. 그래서 시인 김수영은 사물을 바로 볼 것을 요구했던 것같습니다.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사물을 "바로 보아야" 바보짓을 덜할 거라는 것입니다. 단산과 오대산은 전혀 다른 사물일 텐데 그것을 바로 보지 못했으면서 마치 제대로 본 것처럼 우길뻔 했으니 얼마나 낭패였겠습니까. 모든 것이 아집이고 제가 크게 우둔할 뿐입니다.


당신도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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