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 매화 향기로

by 양진건


구면의 TV작가가 전화를 와서 추사가 제주에서도 매화를 좋아했냐고 물었습니다. '추사유배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매화 이야기를 곁들였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요즘이 매화가 만개할 때이기도 하고 마침 '추사유배길'에 커다란 매화공원이 만들어져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물론 추사는 제주도에서도 매화를 좋아했습니다.

매화는 이른 봄 눈 속에서 제일 먼저 피는 꽃이라고 하여 흔히 설중매라고도 불립니다. 매화는 추위가 덜 가신 초봄에 꽃이 피기 시작하므로 봄소식을 알려주는 나무로 아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를 상징하기에 추사만이 아니라 사대부들이 좋아했던 대표적인 꽃이었습니다.

추사가 제주에서 남긴 시 가운데 <제목을 잃다 (失題)>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집 매화나무가 옛 다리 동쪽에 있었는데 (我家金鯽舊橋東), 붉은 꽃 피자 흰 꽃도 따라서 피었네 (紅者開兼白者同)"

이 시를 보면 추사가 유배생활을 하던 대정에는 흰매화와 분홍매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매화나무는 흰꽃이 피는 것을 기본형으로 삼고 있으나 분홍꽃이 피는 것과 구별하기 위해 흰매화, 분홍매화로 구분을 합니다.

매화가 추위를 견디고 한 점 꽃향기로 만물의 봄을 되살리듯이, 선비들이 어려운 형편에 처해서도 절의를 세웠던 것처럼 오늘 우리 현실도 그러길 바라지만 최근의 국정농단 사태 같은 문제를 지켜보고 있자면 다만 착잡할 뿐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도 변했다고 밖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지만 그럼에도 꽃만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주말에 일부러라도 꽃을 찾아 나가보시지 않겠습니까? 나가 보시면 크게 놀라실 겁니다. 저도 친구 덕에 나가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가 매형을 보러 가자기에 막걸리 잘 사주시는 그 매형(妹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걸? 매화였습니다. 곱게 핀 매화가 형같다며 매형(梅兄)이라 부르며 친구가 곱게 늙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친구가 하도 멋져서 내친 김에 제가 막걸리를 대신 샀습니다. 매화꽃 아래서 대취했습니다.


이번 겨울의 그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우리 모르는 어느새 매화가 피어있음을 보며 시간의 신비, 산다는 것의 고마움을 느껴보면 얼마나 좋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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