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어김없이 시골, 어음의 작업실을 찾습니다. 수 년 전에 헐값에 구입한 어음의 농가는 이제 제 삶의 일부입니다. 그러니까 제게 있어 그 농가는 러시아의 다차(datcha)와 비슷합니다.
러시아에는 채소도 가꾸고 큰 돈 안 들이고 서민들의 휴식을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아담한 통나무집인 다차라는 주말 별장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 작업실은 별장이라 하기엔 초라한 누옥(陋屋)일 뿐입니다.
다차의 역사는 범상치 않습니다. 헤밍웨이가 진솔한 전쟁문학의 전범을 세우는데 있어서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고 칭찬한 「적군 기병대」의 작가, 이삭 바벨이 스탈린 치하에서 간첩활동 혐의로 체포되었던 곳도 그의 다차였습니다.
저는 어음의 농가를 "달팽이집(蝸廬)"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김택영, 황현과 함께 한말 3대 시인으로 불렸던 강위(姜瑋)가 제주도 유배 중이던 추사 김정희를 찾아와 가르침을 받으면서 "달팽이집에서 10년간 가부좌를 트셨다(蝸廬十載跏趺膝)"라고 스승에 대해 쓴 글에서 빌린 것입니다.
제주도 선비 이한우는 그런 추사를 보며 "천리 밖 남쪽 바다 초가집 한 채/ 밤마다 외로운 마음, 향 사르고 앉아/ 흐느껴 울적마다 흰 머리털 늘어(千里南溟一草堂 孤衷夜夜焚香坐 感泣頭邊白髮生)"라는 절망적인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어음 달팽이집에서 저는 글을 쓰고 홀로 차를 마시며, 절망적이었던 그러나 절망하지 않은 추사를 기억합니다.
그러다가 전혀 돌보지 않았는데도 열매를 내주는 텃밭의 오이나 가지를 보며 환호하곤 합니다. 이런 뜻밖의 고마움 때문에 저는 저의 시집 「귀한 매혹」에 어음에 관한 시를 몇 편 싣기도 했습니다.
어음 달팽이집에 내리는 비는 도심의 그것과 맛이 다릅니다. 어떤 날은 지붕만 개량한 제주도 특유의 외거리집 상방에서 추적추적 비 내리는 풍경을 내다보다 절망하여, 대낮부터 막걸리로 불콰한 채 속절없이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최근 저는 달팽이집에서 도미니크 보나가 쓴 평전 「로맹 가리(Roman Kacew)」를 읽었습니다.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라는 두 가지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거장'과 '자유로운 영혼의 신인'이라는 두 페르소나를 연기하며 권총 자살로 생을 마치기까지 열정과 야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 그의 66년 생애를 조명한 이 책은 퍽이나 세밀해서 흥미로웠습니다.
거기에 시마론(Cimarron)이라는 이름의 로맹 가리의 별장이 나옵니다. '굴레를 벗은 자유로운 말'을 뜻하는 그 집에 처박혀 로맹 가리는 새벽부터 글을 씁니다. 그런데 자치단체에서 생활하수가 쏟아지는 하수구를 별장 근처에 만들기로 결정하자 홧김에 그 집을 팔아버립니다. 그후로 그는 햇빛이 작열하는 또 다른 은신처를 찾아 끊임없이 헤맵니다. 러시아 태생인 그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품고 있는 이상적인 다차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제가 어음을 찾는 것도 사실은 가슴에 늘 고통스럽게 간직한 하나의 집, 하나의 은신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이삭 바벨이나 추사 김정희, 로맹 가리는 물론이고 저 역시 끊임없이 헤매는 '굴레를 벗은 자유로운 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