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음의 작업실을 손보았습니다. 지붕은 파란색의 양철로, 창틀은 하얀색 샤시로 바꿨습니다. 돈을 아끼다보니 여기저기 촌티가 나긴 하지만 그럼에도 지낼만한 작업실로 바뀌었습니다.
보일러를 새로 들이고 샤워기도 새로 달았습니다. 이제 글을 쓰다가 뜨거운 샤워를 즐기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도배도 하고, 부엌에 씽크대까지 들여 놓았습니다. 투명한 소주잔들을 씻고 선반에 올려놓는 재미가 새로울 것입니다. 그리고 집 주변의 잔디를 자르고 나무들 가지도 쳤습니다. 시골집을 다스린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쉬엄쉬엄 혼자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대나무들이지만 뿌리가 집을 침범한다고 해서 뭉툭 잘라내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책들을 정리하고나니 일단 어음의 작업실 정돈은 대충 끝났것 같았습니다.
곧 <어음달팽이집>이라는 멋진 현판도 달려고 합니다. "달팽이집(蝸廬)"이란 제주도 유배시절에 9년을 머물던 집을 두고 추사 김정희가 말했던 것을 빌린 것입니다. 그리고 달팽이처럼 깊이 파뭍혀, 느리게 글을 쓸 것입니다.
글을 쓰는 동안 만일 세상이 불공정하거나 나의 이해를 넘어설 때, 어음의 시간은 일이 그렇게 풀리는 것이 결코 놀랄 일은 아니라고 내게 말해 주고, 저를 부드럽게 다독이며 한계를 인정하게 해줄 것입니다. 또한 어음의 시간은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나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게 일깨워 줄 것입니다.
그래서 작업실에 있는 동안은 나의 삶을 힘겹게 만드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나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어음의 작업실을 그 어느 곳보다 좋아하게 됩니다.
욕심이 허락된다면 오디오를 새로 들여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밤을 새다가 새벽 서너시쯤에 쇼팽을 크게 틀어놓고 새시집 원고를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새 오디오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지금의 것도 쓸만은 하지만 그러나 천부적 쇼팽연주자라 불리는 야니나 피알코프스카의 CD만은 새로 구입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파란색의 양철지붕 아래서 쇼팽을 들으며 글을 쓸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