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학동산

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by 양진건

비학동산



하귀리 비학동산.

겨울바람 불어 길게 휘어지는 팽나무,

12명더러 자수하라고 했지만 혼 갔더니

다른 사람들도 데리고 오라며

못 데리고 오면 너만이라도 오라고 해서

다시 혼자만 지서로 간 사람은

느닷없이 총살을 당하더니

그리곤 마을 전체에 소탕령이 내려졌다.

비학동산에 사람들을 다 모이게 하고

도피자 가족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니

혼자 지서로 갔다가 총맞아 죽은 사람의

73세 아버지가 나서자마자 무조건 쏘아버렸고

놀란 까마귀가 날개를 급히 푸드덕 거리더니

아침 9시쯤 마을 사람들을 불러놓고

10시부터 총살시작되어 36명이 죽었다.

1시경에 도피자 집들이 불태워지면서

늦게 나오는 바람에 만삭인 임산부는

팽나무에 달아매어져 긴 철창에 찔려 죽고

휘파람새였는지 새소리가 들리는것도 같았는데

숨었다가 잡혀 온 아들을 막 때리니

보다 못한 아버지가 대신 맞겠노라 나서

아버지도, 아들도 함께 죽여 버리고

저녀노을처럼 팽나무에서 마을쪽으로

물감을 풀은 듯 피 내음이 벌겋게 지더

비학동산엔 내내 비린 바람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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