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하룻날 제사

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by 양진건

열 하룻날 제사



11월 칼바람 속에 보리를 한창 갈 때

사람들은 리사무소에 집결하여 민보단을 조직했지.

그들 중 밝게 타는 태양처럼 건강한 젊은이들만

따로 뽑아 특공대를 만들었는데

수만이, 시행이, 동화까지 합쳐 36명.

그들은 마을 순찰도 하고

폭도들이 습격해 오면 돌격조로 대항도 했지만

경찰이나 부대가 산에 토벌 가면

지리도 알려 줄 겸 총알받이 노릇이 주된 임무였지.

그 덕에 그들은 생전 처음 돌오름도 가보고,

한수기도, 늦가을의 공초왓도 가보았지만.

그런데 총알받이에 죽창만으론 힘이 드니

특공대도 무장시켜달라고 어느 날 건의를 했지.

건의를 받은 부대장은 어수선한 표정을 짓더니

그러냐고 그러면 씩씩한 사람으로

명단을 만들어 보고하라고 했어.

그때 무언가 눈치챘어야 했는데 순진한 특공대장은

특공대들 가운데 추리고 또 추려

11명을 선발하여 그들을 부대로 데려갔지.

그때 까악까악 까마귀들만 그 광경을 목격했지만

갑작스레 11명을 체포하더니

“이놈들은 빨갱이다. 총을 주면 대항하려고 한다“며

막무가내로 일행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어.

그게 아닌데 정말 그게 아닌데

아무리 항변해 본들 말을 들어주질 않더니

음력 12월8일에 특공대장을 먼저 죽이고

남은 열 사람은 열이틀에 다 죽였어.

부대에서 200미터 되는 탄약고 길 서녘 쪽.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11명이 한날한시에 죽었지.

그때 용원이는 20살, 창숙이는 19살이었어.

그래서 그들 모두 열 하룻날 제사를 지내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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