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상에 나 혼자

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by 양진건

지구 상에 나 혼자



북촌, 집 근처 굴에서 10여명이 숨어 살다가

6명이 모두 경찰과 미군에게 붙잡혔다.

미군이 한국말로 “빨갱이, 빨갱이” 하면서

우리에게 총을 들이대곤 쏘는 시늉을 했다.

수갑을 채우더니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고춧물을 코로 붓고, 발로 막 밟아 놓고

경찰서로 끌고 가서 서너 달 동안

구쟁기작살 고문, 머구리 고문, 전기 고문,

비행기 고문, 물 고문 등 지독한 취조를 해댔다.

왜 갈가리 찢겨지는데도 죽지는 못하는 건지

진정, 질긴 목숨은 죽느니 마니 못했다.

광주형무소에서 재판을 받고 나는 1년

동생은 2년, 형님은 5년형을 받아

나는 광주형무소에 형님과 같이 있었고,

동생은 인천형무소로 보내졌다.

형님은 간수와 죄수들 밥 하는 곳에 있었고,

나는 화장실 오물을 받아다가 농장 일을 했다.

채소가 자라는 만큼 그 만큼만 희망을 부지하다가

그 탓인지 석방이 되어 고향에 돌아와 보니

불에 탄 마을은 저승처럼 황량했고

사람들은 살아보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죽은 아버지는 옷가지로만 겨우 알아보았다고 하고

어머니도 얼마 안 되어 앓다가 가신 데다

귀여운 여동생들도 다 죽고 없었다.

동생은 인천형무소에서 한번 편지 온 후 행방불명

형님 또한 광주형무소에서 마찬가지,

이 지구상엔 나 혼자만 남게 되었지만

어제도 오늘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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