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오름 아래 오름들.
그 오름 아래
검은 만리의 돌담,
돌담 끝에 키 작은 소나무,
그 그늘에 빈 초가집,
한쪽으로만 지붕이 기울고
고통인지 기쁨인지 사랑도 기울고
훌쩍, 까마귀들은 떠나고
그 초가집을 향한 사내의 이른 귀가.
중천에 해는 빛나는데
낮술이 독했는지
지팡이는 느리지만
사내 가슴은 더 뜨거워져
물과 불을 꿈꾸고,
폐허와 심장을 꿈꾸고
웅크려 꿈꾸는 동안
오래된 하늘은 온통 황토빛.
긴 하루, 집으로 돌아갈 때 / 변시지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변시지는 1926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 조선인 최초로 일전(日展)에 입선하였으며, 1948년 일본의 최고 중앙화단인 광풍회의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57년 한국에 돌아와 서라벌 예술대, 한양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1975년에 제주대학교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였다. 2013년 6월 지병으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