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고충석총장 퇴임논총에 실을 그림을 받으러
움푹 패인 도로 곁에 지어진
서귀포 변시지 화실을 찾았었는데
선생은 그림을 줄 생각은 하시지 않고
이 말 저 말 만.
죽은 조랑말 냄새부터
추사 김정희 귀양살이까지 얘기하시다가
어디론가 구불구불 데리고 가더니
내 생애 처음 마셔 본 포도주 폭탄주.
그 어디론가 가기 전에
논총에 실으라며 불쑥 건네준 두루마리때문
폭풍의 화가가 제조한 폭풍의 폭탄주에
취할 겨를도 없었지만
선생과 헤어지며 풀린 눈으로 뒤 돌아보니
그 역시 분명 유배인이었던 듯.
제주시로 넘어오는 택시 안에서
술 내음 참으며 조심스레 그림을 펼쳐봤더니
아닌게 아니라
아, 유배지 제주도
그 쓸쓸하게 고운 풍경
풍경 / 변시지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변시지는 1926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 조선인 최초로 일전(日展)에 입선하였으며, 1948년 일본의 최고 중앙화단인 광풍회의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57년 한국에 돌아와 서라벌 예술대, 한양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1975년에 제주대학교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였다. 2013년 6월 지병으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