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다른 검투사를 죽일 때마다
관중들은 콧구멍 벌렁거리며 뜨겁게 환호하고
용맹하게 잘 싸운다고 영웅 대접 받으며
검투사는 짐승이 되어 갔다.
언젠가 콜로세움이 크게 무너지고
관중들이 우르르 흩어지면서
끝내 그 짐승은 멸종한 줄 알았는데
그러나 문명은 반복인가
지하철에서, 아파트에서, 사무실에서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른 채
어느 날 우리가 검투사가 되어 있었다.
영웅도 없고 관중마저 검투사가 되었기에
멸종의 그 짐승에겐
그토록 많은 피가 필요한 것인지
우리는 우리의 콜로세움에서
갑옷 대신 신사복을, 철가면 대신 화장을 하고
매일 누군가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콜로세움 / 변시지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변시지는 1926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 조선인 최초로 일전(日展)에 입선하였으며, 1948년 일본의 최고 중앙화단인 광풍회의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57년 한국에 돌아와 서라벌 예술대, 한양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1975년에 제주대학교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였다. 2013년 6월 지병으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