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무엇이 문제인가요?
저희들의 아버지들은 매일 매일의 악몽처럼
저희들의 어머니들을 만나시고
어머니들은 기쁘면 기쁜 대로,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저희들을 낳으시고
아버지들은 어머니들과 저희들을
숨기거나, 외면하거나,
저희들은 아버지들이 없는 방에서
혹은 한사람씩 가라앉거나,
방구석에는 수백번씩 파닥거리는 나방.
그러니 무엇이 문제인가요?
어머니들이 홀로 저희들을 키우는 동안,
어머니들의 호적마다 저희가 등록되는 동안
이제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계절.
저희들의 아버지들은 저희들의 어머니들을 위해
조금씩 미안해하면서 그리고 손을 씼고
낮고 낮은 지붕들 아래로
소문들은 양육비처럼 커가고, 사라져가고
늘 축축한 냄새가 났죠
차라리 쥐가 되고 싶었지만,
이빨과 발톱뿐이었지만
그러나, 그러니 무엇이 문제인가요.
생존 / 변시지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변시지는 1926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 조선인 최초로 일전(日展)에 입선하였으며, 1948년 일본의 최고 중앙화단인 광풍회의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57년 한국에 돌아와 서라벌 예술대, 한양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1975년에 제주대학교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였다. 2013년 6월 지병으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