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서점주인이 되었습니다.

- 처음 문을 열던 날

by 서점 리스본


저는 일주일에 세 번 라디오에 출근해야 했고, 변편도 따로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문을 열 수는 없었습니다. 원칙이라고는 없는 가운데 유일한 원칙이 있었다면 '부담없이 하자'였습니다. 저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한 번 시작한 일은 쉽게 거두지 않는다는 것. 진짜 서점이라기보단 그저 '서점놀이'에 불과한 것이지만 일단 시작을 했으니 적어도 계약기간인 2년은 채우고 싶었습니다. 오래 가되 부담없이, 그러나 꾸준히 - 거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즐겁게'. 이 정도가 계획의 전부였습니다.

저는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 두게 된 변편이 계속 일을 했으면 바랐습니다. 부담없이, 하지만 비전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길 바랐죠. 무엇보다도 변편이 원했습니다. 나중에 변편이 1인 출판사를 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일단 사업자 등록을 출판으로 하자 했습니다. 저는 출판업에는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만, <그래도, 사랑> <다시, 사랑> <거기, 우리가 있었다>까지 저의 인생에 중요하게 남을 책을 세 권이나 만들어준 변편에게 저도 어떤 식으로든 힘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작업실이 제 명의로 계약되어 있었고 제가 세금공제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먼저 사업자 등록을 내야했죠. 마포세무소에 등록하러 갔는데 마침 부가세 신고 기간이라 무려 1시간 반이나 차례를 기다려야 하더군요. 마침내 차례가 되어 관련 서류를 내밀었습니다. "업종은요?" "출판이요." "출판업 등록증 주세요." "등록증이요? 그런 것도 있어야 하나요?" "(한숨) 예. 출판은 등록이 필요해요. 구청에 가서 등록증을 받은 다음에 다시 오세요." 저는 생각했죠. '1시간 반이나 기다렸다고! 이걸 또하라고? 심지어 구청까지 가야해?' 고개를 갸웃하고 질문했습니다. "음... 그럼 서점?!" 서점은 별도의 등록 없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관련 종목에 '서적'이라고 찍힌 사업자 등록증을 받고 세무소 현관을 나오는데 웃음이 터졌습니다. '서점 주인이 됐다. 정말로 서점 주인이 됐어!' 어릴 때 꿈이었던 서점 주인. 세상에. 그 꿈을 이루는 것은 허무할 정도로 쉬웠습니다.

사업자 등록증이 나오자 저는 책의 리스트를 적었고 변편은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저희는 책의 유통과정에 대해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출판사와 직거래를 하자!'고 야심차게 의욕을 불태웠습니다만. "10권 이상만 거래가 됩니다." "20권 이상만 가능합니다." "저희는 작은 서점이랑 직거래 안해요." "아니, 뭐하러 고생을 사서 합니까? 그냥 남들처럼 도매상을 통하세요." 물론 그런 가운데도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나의 땅에서 온 지구로>를 출간한 솔빛길 출판사 사장님 같은 분도 계셨습니다. "한 권이면 어떻습니까? 마침 저희 출판사가 가까운 곳에 있으니 직접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출근을 해보니 우체통에 '도영'이라고 사장님 성함이 적힌 회색 서류 봉투가 꽂혀 있었습니다.

서점 이름은 드로잉+북 리스본. 작업실을 만들 때 미술선생 SJ와 이미 정해두었습니다. SJ는 그림을 그리고 저는 책을 쓰니 드로잉+북이라고 하자 했지요. 그렇다면 리스본은 왜? 작업실을 계약하던 날 SJ와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러 갔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라서 그랬을까요? 다른 영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영화의 주인공은 우연히 손에 넣은 책 한 권을 따라 스위스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포르투갈까지 갑니다. 인생에 파격이라고는 없던 노신사였죠.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그는 열정, 자기 안에는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세상을 다시 보게 됐고, 두근거리며 한 여자를 바라보게도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 그것이 제가 꿈꾸는 '책과의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잠들었던 내면의 무엇이 깨어나고, 결국엔 사랑이길 바랐습니다. 그러니 '리스본'이 어떻겠는가? SJ에게 물으면서 저는 소심하게 덧붙였습니다. "'본'은 일본어로 책이기도 하잖아." SJ는 "오! 맞다! 그렇다!"라며 경쾌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서점을 엽니다 - 라고 SNS에 공지를 올렸지만 누가 우리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오픈을 준비하며 예쁜 앞치마도 사고 우리끼리 즐거웠죠. 변편이 그러더군요. "다른 건 다 필요없어요. 하지만 마쓰다 미리 책에 나오는 서점의 점장처럼 귀여운 앞치마를 하고 싶어요." 우리는 연남동 인근 멀티샵을 모두 돌아보고 <1984>에서 마침내 결정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온 갈색의 앞치마. 16만원이나 했지만 다른 건 원하지 않는다니 그 정도는 기꺼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앞치마 값을 버는 데까지 반년은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월세 내기에도 빠듯했죠.)
드디어 문을 열던 날. 아직 봄날인데 장맛비 같은 폭우가 내렸습니다. 천둥 번개까지 쳤어요. 심지어 이런 날인데 누군가 올 리가 없다고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마주 앉아 하품을 하다가 프로젝터로 벽에 일드를 쏘았습니다. 변편이 권해준 것으로 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더군요. 일드에는 취미가 없었습니다만 골라준 정성을 생각해서 문쪽 벽에 가득 차게 화면을 띄워놓고 열심히 보는 척 하고 있는데, 화면 한쪽이 열렸습니다. 서점 문이 열린 겁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문이 꽉 차도록 덩치가 커다란 남자분이었습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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