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수업에서 생긴 일] 진상손님이 괜찮은 이유

by 서점 리스본

"요즘 같은 시대에 2시간 걸려 출강이라니!"

차 안에서 텀블러에 담아온 두유라떼를 마시는 중이었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서둘러 출발한 참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라서 2시간 걸려 출강하는 게 찐이죠"

수화기 너머 후배의 말에 웃는다. 여유를 잃은지 오래 되었다.

우리 서점은 서울에 있지만 묘하게 수원에서 찾아오는 분이 많았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강의 제의가 왔길래 어려운 시기에 찾아와주셨던 분들을 만날 수 있겠지 싶어 승락했다. 기꺼이,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20분이나 제자리에 묶여 있기 전까지는 정말이지 기꺼이였다. 오랜만에 2시간을 운전하니 허리가 뻐근했다. 시간에 쫓기는 게 싫어 라디오 작가를 그만 뒀는데 또 시간에 쫓기며 사는구나, '경기도 수원'이라 써 있는 표지를 보며 생각했다. 수원역 근처에 들어서니 풍경이 낯익다. 십 몇 년 전 수원 사는 남자와 연애했었다. 잊고 있었네. 평생 처음 매일 나에게 예쁘다고 말해줬던 남자였는데.


2분 늦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스크 너머 반짝이는 눈들. 1시간짜리 수업인데 떠들다 보니 1시간 30분. 질문에 답하다보니 2시간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은 세컨 라이프용 직업으로, 혹은 세컨잡 n잡용으로 서점 주인을 생각한다. 나 역시도 같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본래 하던 일을 접고 전업 서점주인이 되었다. 서점 일은 자잘하지만 끝도 없다. 어제도 새벽 5시에 일어나 12시까지 일했다. 매일 향 하나씩을 태우는 느낌이다. 다 타고 났는데 재도 없이 사라지는 하루. 후회는 없다. 후회할 틈도 없이 3년, 5년이 지났다. 출판관계자들에게 '다음 책을 기다리는 저를 생각해서라도 분발해주세요. 글 써주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만 내가 본래 작가였다는 걸 기억할 뿐이다. 글쓰는 일은 평생 어느 때든 앉을 의자와 기댈 테이블과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된다.


강의에 가면 귀여운 질문을 받곤 한다.


"저는 유리멘탈인데요, 진상손님들을 어떻게 대처하죠?"

"대답해보실래요? 진상손님은 피할 수 있다, 없다?!"

"없다"

"진상 손님은 왔다 간다, 평생 안 간다?!"

"간다"라고 대답하며 수강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점이 직장생활과 달라요. 상사는 보기 싫어도 월화수목금 봐야 하지만 진상손님은 달라요. 10분, 길게는 1시간 정도 머물다가 사라지고 대부분 다시는 안 오거든요. 단, 우리가 괜히 친절하면 다시 와요. 외로운 사람들이니까. 친절하지 않으면 돼요. 우리는 친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책을 파는 것이니까요. 곧 갈 거다, 사라질 거다 생각하면 대부분 견딜 수 있지만 안 되면 저는 제가 나가버려요, 그들이 나갈 때까지. 자영업인데 그 정도 자유는 누려야 하지 않겠나요?"


집에 와서 생각했다. '예전에 권일용 교수가 북토크 때 해 준 말을 전했어야 하는데!'
관객이 물었다. 프로파일러로 일하려면 스트레스가 굉장할텐데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제 별명이 권삐루예요. 맥주를 좋아하거든요. 일 끝나고 동료들과 모여서 맥주 마시며 풉니다. 단, 퇴근 후에는 일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원칙이에요. 각자 사는 얘기를 합니다. 취미 얘기, 친구 얘기, 사소한 얘기."

대답하며 권일용 교수, 딱딱하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맞다. 좋은 동료가 큰 도움이 된다. 또 하나, 소명의식. 전업 서점 주인이 되자 같이 방송 하던 동료가 커피 마시며 말했다.


"작가님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작가님이 서점을 하면 성공할 거예요. 하지만 공간에 묶이겠죠. 공간의 노예가 될 수도 있어요. 드라마를 쓰면 크고 좋은 작가가 될텐데요. 자유롭게 여행하며 글 쓰고."


아니, 여행은 잠깐이고 숨막히는 마감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겠지. 라디오 작가도 자유롭지 않고 평화롭지 않았는데 드라마 작가라니 -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와는 단막을 하나 준비해봤지만 나는 드라마 작가로는 부족한 사람이 입증되었다. 나를 움직이는 건 '가치있음'과 '소명의식'인데 TV를 보지 않은지 20년은 넘은 터였다. 드라마가 사회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공부하며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서점 주인이 느끼는 보람이야 확실하다. 매일 사람을 만나고 책이 세상을 다니며 하는 일들을 본다. 책을 중심으로 사람을 모으면 다정한 일들이 수시로 일어난다. 내 인생을 위해 어느 쪽이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내가 즐거운 일, 나로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뿐이다. 고단한 하루가 가치 있다고 느끼니까 매일 밤 후회없이 잠든다.


그럼에도 서점 주인이 되는 일은 위험하다. 잘 팔아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아예 안하고 로맨틱한 환상 속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2년이 지나 임대계약이 만료되면 기권하는 일이 잦다. 책을 파는 건 예쁜 굿즈를 파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표지를 펼치고 안을 읽어보게 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팔기까지 해야 하다니. 이 시대에. 단가는 어떤가. 보통 1만 몇 천원인데, 1만원짜리를 팔면 서점엔 2천원 정도 남는다. 장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답이 없는 게임이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대학에 강의를 갔다가 이제 겨우 서른인데 세 번의 창업에 성공했다는 청년을 만났다.
"사업은 어떻게 배웠어요?" 물었더니 "유튜브요"라고 대답했다. 몰랐던 유튜브의 기능을 깨달은 나는 그날 당장 창업에 관한 콘텐츠를 찾아보았는데 알고리즘이 계속 비슷하지만 다른 콘텐츠들을 띄워줘서 연속해서 듣다가 카페 프릳츠 대표 이야기에 웃었다.

"좋은 커피를 제공하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카페를 시작하고 보니 유지하기 위해서 엄청 많은 일을 해야 해요. 바퀴를 좋아해서 하나 직접 만들었는데 굴러가기 시작하니까 멈출까봐 걱정, 망가질까봐 걱정하는 상태가 된 거죠."

망하지는 않았지만 유지 자체도 힘들어서 하루 5시간 이상 잠들지 못한다. 일어나면 책을 읽고, 커피를 마셔서 뇌가 각성되면 라디오를 들으며 샤워를 한다. 아침 음악방송이 아니다. 뉴스 시사 방송이다. 이 무슨 CEO 스러운 삶이란 말인가.

단골손님이 엽서를 주고 갔다. '우리들의 낭만. 서점, 리스본'이라 적혀 있었다.
우리들의 낭만이 되기 위하여 팍팍한 현실을 견딘다.
진상손님?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내겐 견뎌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계속해서 '낭만'이 되고 싶다. 지속가능한 낭만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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