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라디오] 서점 로맨스

사랑은 1킬로미터 반경 안에 있다.

by 서점 리스본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합니다. “책에서 읽었는데 인연은 1킬로미터 반경 안에 있대요.”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남자 주인공 마틴은 산타페 1105번지 4층에 삽니다. 여자 주인공 마리아나는 1183번지 8층에 삽니다. 서로 접해 있는 두 집이었죠. 남자는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작은 집에 가둡니다. 웹디자이너라 모든 일을 온라인으로 해결할 수 있었죠. 사람을 만나는 통로 역시 온라인 채팅 뿐이었습니다. 여자는 오래된 쇼윈도 디스플레이가 직업입니다. 오래된 사랑을 막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반기는 것은 마네킹 뿐입니다. 허전한 마음에 여자는 마네킹을 끌어안고 지내지만 체온도 교감도 없는 포옹이라니. 외로움만 더 커질 뿐이었죠. 공허 속에서 헤매던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초를 사러 집을 나섭니다. 화면에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서 있는 상점 안 풍경이 담깁니다. 희미하게 켜져 있던 촛불이 훅 꺼집니다. 완벽한 어둠 속에 두 사람은 서 있습니다. 허둥대다가 서로의 손이 스쳤을 때 전기가 통합니다. 그제야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았죠.

‘자기 안에 갇혀 있으면 인연을 만날 수 없다. 스스로 쳐놓은 벽을 넘어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어쩌면 눈을 감았을 때 더 잘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고도 말합니다. 아직 결정적 순간이 오지 않았을 뿐, 사랑은 곁에 있는 지도 모릅니다.


지난 여름. 서점 단골이 찾아와서는 “지금 정동진 영화제 갈 건데 기차 안에서 읽을 책으로 뭐가 좋을까요?”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다른 서점 단골이 와서는 책 한 권을 건네면서 “정동진 영화제 다녀오는 길인데요, 20주년 됐다고 기념 책자를 주더라고요. 한 번 보실래요?”라고 했습니다. 전날의 여인과 청년이 제 머리 속에서 연결되던 첫 번째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여인을 보면 청년이 떠오르고, 청년을 보면 여인이 떠올랐습니다. 둘은 무엇보다 책을 고르는 결이 닮아 있었습니다. 취향이 같고 다감한 성품이니 같이 있으면 둘 사이에 좋은 것이 오고 가겠다 싶었습니다. 여인에게 물었죠. “동네친구 소개해줄까요?” 청년에게도 물었습니다. 대답은 똑같았어요. “좋은 사람이라면 좋아요!”


자연스럽기를 원해서 또 한 두달이 흘러 우연히 두 사람이 서점 안에 같이 있게 됐습니다. 청년이 열흘간 여행 가는데 고양이 좀 봐줄 수 있냐고 제게 묻더군요. 털 알러지가 있어서 곤란하니 친구들에게 물어보겠다 대답하는데 여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기.......” 여인을 부르고 물었죠. “혹시 고양이 키워요?” 눈을 크게 뜨고 말하더군요. “네. 두 마리나 키우는 걸요!” 둘은 나란히 섰고 서로 고양이 사진을 보며 정다웠습니다.


“신기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이야기했는데 그녀가 자기 플레이 리스트를 보여줬어요. 거기 방금 얘기한 노래들이 다 들어 있는 거 있죠? 제가 피나 바우쉬 좋아한다니까 직접 공연 보러 세 번이나 외국에 다녀왔다는 거예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이제 두 사람은 나란히 서점에 옵니다. 또다른 단골이 커플이냐 물었는데 여인은 아직 아니라고 했고, 청년은 커플일 수도 있다며 웃더군요. 관계의 이름이 중요할까요. 둘이 같이 있을 때면 혼자 있을 때보다 양쪽 모두 환하고 빛이 나는데.


엊그제 두 사람이 나란히 서점 안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말했습니다. “정동진 영화제 말이에요! 저희 둘이 같은 날 같은 영화를 봤더라고요. 사진을 보여줬는데, 세상에, 저희 둘이 바로 옆에 앉아 있었던 거 있죠!”


<첨밀밀>의 기차씬은 영화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곁에 있습니다. 사랑은. 때가 되어야만 알 수 있을 뿐. 그러니 걱정을 잊고 오늘도 나다운 좋은 것으로 나를 채웁니다. 결국 인연을 알아채는 순간, ‘멋진 사람으로 내게 와주었구나, 고맙다’ 서로 웃을 수 있도록.




:: : 2018년 11월 빅이슈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서점 라디오] 리스본 라디오, 온 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