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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리스본 May 19. 2021

교환편지 프로젝트] 광재님의 네번째 편지

2021년 5월 15일 : 편지 쓰는 사이에 비가 그쳤습니다.

 #교환편지프로젝트 #우정에는나이가없다 


김광재님의 네번째 편지 : 2021년 5월 15일

 

이슬비 내리는 아침입니다. 침대에서 뭉그적대다가 새소리에 일어났어요. 혹시 우리 집 제비인가 싶어 나갔더니, 제비는 집에 있네요. 무슨 새일까요? 저는 좀처럼 새소리 주인을 알지 못하겠거든요. 이틀 전에 제주 서쪽 고산리로 여행을 왔어요. 유명 여행지가 아니라 마을이 아주 조용합니다. 어제 보니, 제비집은 오목한 공기 모양이었어요. 보리밭 위를 춤추듯 나는 제비는 정말 빠르더라고요. 저녁에 보니까 제비 두 마리가 집에 있었는데 곧, 알도 품겠지요? 숙소 주인은 제비집이 반갑지 않다고 했는데 저는 들락거릴 때마다 제비집을 살펴보고 있어요.

 

어제는 ‘포도 뮤지엄’에서 케테 콜비츠(독일. 1867-1945. 판화가/조각가)의 ‘아가, 봄이 왔다’ 전시를 봤어요. 구는 케테 콜비츠를 아시나요. 저는 의사인 남편과 함께 전쟁을 반대하며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한 작품 활동을 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전시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어요. 둘째 아들(18살)은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고, 그로 인해 전쟁에서 죽어간 수많은 청년의 부모 마음을 대변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을요. 속으로 타들어 가는 엄마 마음과 슬픔을 견디려고 애쓰는 아빠 마음이 표현된 조각상 이야기는 묵직하게 제 마음을 채웠어요.

 

집에 와서도 케테 콜비츠의 엄마 마음에서 서성거리다가 구에게 답장이 쓰고 싶어졌어요. ‘엄마를 찾아서’는 세 번째 모임을 앞두고 있네요. 저는 첫 모임이 즐거웠다는 말씀이 무척 기뻤어요. 구는 엄마를 모시고 무언가 하는 일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고 하셨는데, 무언가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면 분명 여러 번 아니 많이 해 보셨을 거예요. 시장, 목욕탕, TV, 영화, 컴퓨터와 휴대폰 사용법 알려드리기 등등이요. 그리고 좋은 식당을 예약하는 일은 앞으로 아주 많이 할 기회가 있답니다. 제 아들은 어린이날 선물은 십몇 년 받았는데, 어버이날 선물은 계속이라고 장난삼아 구시렁대거든요. 저는, 그렇게 아쉬우면 너도 네 아이에게 받으렴 했답니다.

 

구의 컨디션은 말끔해졌는지, 이제야 묻습니다. ‘엄마를 찾아서’가 끝나야 산뜻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요, 저는 요즘 과로 중인데 ‘서점 리스본 포르투 전시’ 덕분입니다. 5월 28일부터인데 아직 그림을 다 그리지 못했거든요. ‘바다’를 주제로 펜과 색연필로 그리고 있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바다를 서성거리며 혹시 돌고래를 만날까 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중이랍니다.

 

편지 쓰는 사이에 비가 그쳤습니다. 제가 있는 방에서는 감귤 나무가 보여요. 꽃이 필락 말락 하는데, 어제는 제가 가기 전에 감귤꽃 향을 맡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 글에서 사과 향이 난다는 문장 때문일까요. 구의 생각 노트에서 옮겨 주신 ‘읽는다는 것, 글 쓴다는 것, 책 본다는 것’에 관한 글은 제 노트에 적었어요. 저는 “모든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니체)를 전해드려요. 구의 마음에 들기를, 세 번째 모임도 즐겁기를 바라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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