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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리스본 Jun 14. 2021

우울은 제게 도착하지 않았으니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 교환편지 프로젝트] 광재님의 편지 2021년 6월 10일

2021년 6월 10일


답장 기다렸어요. 그래서인지 구의 편지가 더욱 반갑네요. 지금은 컨디션이 괜찮아졌다니 다행이에요. ‘엄마를 찾아서’ 프로젝트는 잘 끝났지요. 일에는 시작하기 전에는 설렘과 준비로, 끝날 때는 아쉬움과 마무리로 ‘바쁘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구의 편지에서 제가 머문 곳은 “언제나 과정에 놓인 사람은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과정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제가 불안한 이유도 그것이겠죠.”였어요. 처음에는 과정에 놓인 사람이 따로 있을까 싶었어요. 곧, 행간을 읽었지만요. 구는 청춘이니까요. 이루어야 할 게 여럿일 거예요.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궁리했어요.


매주 수요일은 리스본 글쓰기 클럽 줌 미팅이 있는 날이에요. 그저께는 <글쓰기의 최전선>(은유) 읽기 숙제가 있어 선풍기 앞에서 책을 읽었어요. 에어컨을 켤까 하다가 너무 일러 하고는 얼음물을 마셨죠. 손에는 연두와 주황 색연필을 들고서요. 그러다가 구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글을 만났어요. “내가 쓴 글이 나다. 부족해(보여)도 지금 자기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실패하면서 조금씩 나아간다는 점에서 나는 글쓰기가 좋다. 쓰면서 실망하고 그래도 다시 쓰는 그 부단한 과정은 사는 것과 꼭 닮았다.” 어때요. 구 마음에도 드나요. 저는 글쓰기 대신 그림을 넣어 읽어 봤어요.


그리고는 웃었는데 이유는 이래요. 지난번에 <나의 두 사람>(김달님) 읽을 때도 구에게 편지가 오면 알려 줘야지 했거든요. 읽은 책인가요? 김달님은 너무 일찍 부모가 된 부모 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부모였어요. 저는 느닷없이 쉰 살 넘어 손녀의 부모가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 심정이 됐다가 글 참 잘 쓰는 작가를 부러워했다가, 아이가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는 일 년 후에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도 냈는데, 이번엔 작가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보호자였어요. 그사이 글은 더욱 단단하고 깊어졌는데, 은유 말을 빌리면 김달님에게는 ‘부단한 과정’이 있었을 거예요. 그가 글 잘 쓰는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제가 눈여겨본 것은 퇴근 후에 날마다 글을 썼다는 점입니다. 재능, 체력은 어쩔 수 없어도 날마다 글 쓰는 일은 저도 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에 서점 포르투를 간 적이 있나요? 저는 ‘바다’ 전시 덕분에 자주 간답니다. 덥거나 비가 오는 날이 많은데도 손님이 많아서 무척 즐겁습니다. 방명록에 좋은 글을 남겨 주신 분도 있어서 그림 그리기 잘했구나, 생각했어요. 그야말로 그림 그릴 때 수고와 전시 준비할 때 걱정이 사라졌답니다. 전시는 6월 27일까지 연장했어요. 아, 포르투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름 아니라 ‘물수레국화’ 때문입니다. 포르투 옆 ‘땡스오트’쪽 골목으로 물수레국화가 한창인데, 남파랑 꽃이 참 어여뻐요. 예쁘거나 귀엽지 않고 어여쁘답니다. 만약, 구가 포르투에 갈 일이 있다면 꼭 보기를 추천해요. 꽃말도 행복이래요.


실은 구에게 ‘엄마를 찾아서’는 어땠는지 듣고 싶었어요. 클럽에 온 분 중에 인상적인 분은 있었는지,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클럽을 맡아 본 구의 어려움과 보람은 무엇인지 등등. 몇 번 편지가 오갔으니 이제는 좀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해서요.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고요(하하하).


장마도 아닌데 비가 자주 오네요. 더위와 함께 지치기 쉬운 계절이에요. 구의 편지는 답장이 늦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시작해서 오랜만에 편지에 우울을 담아 걱정이라고 끝났는데, 답장은 언제든 편할 때 보내주세요. 또, 우울은 제게 도착하지 않았으니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걱정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일 수 있으나 제게 쓰는 편지가 걱정보다는 즐거움이기를 바란답니다.


이야기가 다소 묵직했나요. 오늘 읽은 글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 옮겨봅니다. “도대체 내 예술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얼큰히 취한 남편이 말하자 아내가 대답했다. “나가 봐.” “어떻게?” “내가 먼저 나가 볼게.” 아내는 다음날 프랑스 영사관을 찾아갔고, 불어를 익혀 1955년 김환기보다 1년 먼저 홀로 현지에 건너가 작업실과 생활 여건을 마련했으며, 대학에서 회화와 미술 비평까지 공부했다. 그것을 가능케 한 뜨거움, 당시를 증언하는 육필 원고 및 사진 등이 전시장에 놓여 있다. 수필에서 밝히고 있듯, 김향안에게 “사랑은 곧 지성(知性)”이었다. 믿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고 “믿는다는 것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지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 ‘김향안, 파리의 추억’展 > 신문 기사


“나가 봐.”가 좋았어요. 제가 구에게 편지를 쓰는 일도 그런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구에게 편지를 보내고 서점 포르투에 갑니다. 물수레국화 구경하고, 제 그림 보고, 방명록을 확인하고, 감나무 꽃이 아직 남아 있나 궁금해서 감나무를 올려다보고 올 생각입니다. 또, 쓰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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