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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리스본 Jan 04. 2022

우정편지] 마롱님께 물속깊이로부터

열번째 편지_2021.12.31


카페 비에이. 제가 들락거리는 나들목은 사실 염강나들목인데, 언젠가의 댓글에 염창나들목으로 잘못 썼다는 걸 편지 받고서야 깨달았어요. 어떻게든 가깝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나봐요. 염강과 염창 사이에서 마롱님과 한 번쯤은 스쳤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사모해마지않는 김연수 작가님 이야기가 많아서 맞아 맞아 맞장구치느라 바빴던 편지지였어요. <밤은 노래한다>는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많이 선물했던 책이기도 해서 더욱이요. 마롱님이 읽고 계시다니 무척 반가웠고요. 무겁게 느껴져서 책장이 잘 안 넘어갈 수 있지만, 그렇게 덮어버리기엔 너무 아쉬운 소설이니, 마롱님 편지를 보시고 많은 분들이 끝까지 읽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작가님이 어떻게 그리 많은 말을 자유자재로 쓰실까 궁금하다 하셨지요. 그 부분은 저도 늘 감탄하는 부분이랍니다(작가님, 혹시 이 편지 읽고 계시다면 답장을 좀, 하하).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작가님이 “매일 쓴다는 건 매일 지운다는 말과 다름없다”고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어요. 어떻게 매일 쓰느냐는, 어쩌면 우문으로 들릴 수 있는 말에 작가님이 주신 현답을 듣고 무릎을 탁! 했던 기억. 매일 지우는 사람. 답은 어쩌면 거기 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마롱님은 무얼 하셨을까요. 글을 쓰고, 요가를 하고, 산책을 하셨을 테지요. 카푸치노도 한 잔 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요, 오늘 밤, 분명 잠은 오지 않을 테니 좋아하는 소설 한 편을 읽으려고 해요. 무슨 소설인지 한 번 맞춰보세요. 너무 쉬워 금방 정답! 하고 외치실 것도 같지만요.


이맘때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지요. 벌써, 라는 생각에 아쉬움도 한가득일 테고요. 그래도, 생각의 끝엔 좋았던 순간들도 많았다는 걸 알게 되어서 좋아요. 떠올리면 별 수 없이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순간이, 그것도 제법 있었다는 걸 말이죠. 12월 31일의 효용이란 여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 며칠 매일 글쓰기 클럽에 썼던 일 년 치의 글을 다시 읽었어요. 저조차 잊고 있던 제가 있어 놀랍기도, 여전한 모습에 웃기도 했네요. 어찌 되었든 일 년을 이러저러하게 살았구나 싶어 안도했어요. 별 것 아닌 글에 쪼로록 달아주신 문우님들의 마음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올해 제일 잘한 일은 글쓰기를 이어온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리고 하나 더. 마롱님 편지를 제일 먼저 받기로 한 일! 좋아하는 일에 용기 내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해주신 것도요. 새해에는 제가 카푸치노 쏠게요. 카페 비에이에서 우연처럼 만날 그날을 기다립니다.


올 초에 제가 썼던 <쇄빙선>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글 쓴 지 거의 일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쇄빙선은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아 시무룩했었어요. 그랬는데, 어쩌면 쇄빙선은 이미 곁에 있었던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며칠 사이에 했어요. 나만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요. 이것이 새해가 주는 마법일까요.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의 마지막 날이니까, 이 문장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우리가 보낸 순간 : 소설>(김연수), 200쪽에 담긴 글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들 지지 마시길. 비에도 지지 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사시길. 다른 모든 일에는 영악해지더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 앞에서는 한없이 순진해지시길. 지난 일 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우리라는 것. 나는 변해서 다시 내가 된다는 것.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자는 말은 결국 그런 뜻이라는 것. 우리는 변하고 변해서 끝내 다시 우리가 되리라는 것. 12월 31일 밤,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선 겨울나무가 새해 아침 온전한 겨울나무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다들 힘내세요.


“변하고 변해서 끝내 다시 우리”가 될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며.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마롱님. 한 해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듬뿍 받으세요.


그럼 저는 기쁜 마음으로 <모두에게 복된 새해>를 읽으러 갈게요. 답이 너무 쉬웠지요. 변하고 변해서 끝내 다시 우리로, 새해에 기쁘게 만나요.


2021년 마지막 날, 물속깊이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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