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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리스본 Mar 07. 2022

우정편지] 마롱으로부터 물속깊이에게

- 신비로운 일들은 익숙한 곳에서 일어난다. 2022년 물오름달 7일

어제는 사울 레이터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햇살은 좋아도 바람은 차서 봄이다 싶은 날, 서울역에서 남대문 시장으로 방향을 틀어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니 시간 여행을 온 듯 나지막한 집들이 나타났는데, 그때부터 피크닉이 좋아졌어요. 코로나와 전쟁과 울진 산불 소식에 마음은 무거웠어도 잠시만 현실을 잊기로 했답니다. 잊는 김에 휴대폰도 잊고, 사진 구경은 실컷 하고 사진은 하나도 찍지 않았어요. 옥상에서는 햇볕을 쬐고 남산 타워를 향해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고 주변도 살폈어요. 주황색 우산을 들고 눈길을 걷는 여인 사진을 볼 때부터 붉은색 장우산을 사야지 했는데, 기념품 가게에서 빨강 우산을 만나 엄청 반가웠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날에 비가 오면, 저는 빨강 우산을 쓸 테니 물속깊이님은 다른 색 우산으로 부탁드려요. 


절기 節氣 물속깊이님, 잘 지내시나요. 지난 일 년 동안 써 주신 스물네 번의 절기 글,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절기와 좀 친해졌어요. 보름에 한 번씩 절기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어떤 글일까 하고 기다렸죠. 물속깊이님이 장난스레 시작한 일이 우리를 즐겁게 했습니다(박수). 경칩 驚蟄이 지났어요. 경칩 한자를 보고 글자가 너무 어려워서 깜짝 놀랐어요. 놀랄 경은 23획, 숨을 칩은 17획. 세종대왕에게 새삼 감사했습니다.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한자에 비하면 쉽지 않을까 해서요. 


저는 일주일에 세 번 하던 요가를 다섯 번으로 늘렸어요. 수영 수업은 시작했어도 안심이 안 되고 꾸준한 운동은 필요해서요. 마침, 새로 온 요가 선생님 수업이 재미도 있었어요. 선생님이 다르니 동작도 달라져서 여기저기 또 근육통이 시작됐습니다. 새로 시작한 일도 있어요. 책상 위에 꽃 두기!!! 지난번에는 노랑 프리지어를 이번에는 주홍 튤립인데 생각보다 기분이 좋아요. 심지어 글쓰기도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와 <두더지 잡기>를 읽고 나서 논픽션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매일 글을 쓰면서, 자기 삶을 톺아보고 글 쓰는 일 그러니까 작가 마음과 노력과 시간을 아주아주 조금이라도 상상할 수 있어서요. 


글쓰기가 저를 어디까지 데려갈까 궁금하다는 생각 끝에 사울 레이터 전시에서 본 “신비로운 일들은 익숙한 곳에서 일어난다. 늘 지구 반대편으로 떠날 필요는 없다.”라는 문장이 생각납니다. 물속깊이님이 절기 글에서 만난 뿌듯함과 제가 요가 운동을 늘리고 논픽션이 좋아지고 꽃을 사는 일, 이 모든 일들도 익숙한 곳에서 우리를 자라게 또, 웃게 하잖아요. 어때요. 벚꽃을 만난 듯, 달이 환한 듯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요. 아침에는 체육관 가는데 발밑으로 나뭇가지 하나가 툭 떨어졌어요. 바람은 안 불었고 저 혼자였습니다. 누구지 했는데, 나무 위에 까치 두 마리가 있었어요. 시간만 있었다면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두더지처럼 범인을 잡았을 텐데 까치가 봄맞이 집수리를 위해 나뭇가지가 필요했나 보다 하고 짐작만 했죠. 잘 지내기를 바라지만, 혹시 그렇지 않다면 그때는 얼른 연락 주세요. 2022년 물오름달 7일. 마롱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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