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하다고 억지로 말을 걸 필요는 없어.

No need to fill the silence.

엘리베이터를 탄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탈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친한 것도 아니고, 대화를 제대로 나눠본 적도 없지만, 확실히 아는 사람이다. 몇 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준 적도 있고, 오가다가 여러 번 마주치다 보니 서로의 이름은 몰라도 눈인사는 한다. 이 정도면 알긴 아는 사람이다. 이 사람도 나를 인식하고 나도 이 사람의 존재를 인식한다. 이때부터 좁은 공간에 둘 만 남으면 어색한 공기가 느껴진다. 불편하다. 이 사람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알긴 아는 사람과 아무런 말도 없이 침묵으로 보내는 찰나의 순간이 불편하다.


이렇게 불편한 순간을 몇 번 경험한 후, 다시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면

"5층 가시죠?"

라는 말로 인사의 말을 대신해 본다. 그럼 상대도

"아, 네, 감사합니다." 라는 말로 인사를 받아준다. 별 거 아니지만 이런 간단한 말 몇 마디가 불편한 침묵을 제거해 주면,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상당히 가볍게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이런 순간들이 꽤 있다. 사실 나는 아예 처음 보는 사람과 있을 때는 괜찮다. 서로 모르는 사이니까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지인 중에는 그런 순간조차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나의 지인을 A라고 하자.


A가 들려준 에피소드 몇 가지가 생각나는데, 그중 하나다. A는 인터넷 TV 설치 기사님과의 어색한 공기를 참지 못했다고 한다. 기사님은 기사님의 일을 하고, A는 그저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는 되는 것인데 말이다.


"다 설치되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아, 혹시 고객님 바쁘신가요"

"아녜요..그런 건.."

"인터넷 작업 완료하고, TV 연결하고 확인까지 하면 30분 정도면 가능할 것 같은데요?"

"아~네~생각보다 별로 안 걸리네요."

"........"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작업 마치고 다른 고객님 댁에도 방문해야 돼서요.."

"아, 그렇죠. 제가 그 생각을 못했네요."

"........"

"저희 집 TV 구매한 지 조금 되었는데, 셋톱 박스랑 연결이 자주 끊어지고 그런 것은 아니겠죠?"

"혹시 그런 적 있으세요?"

"아뇨. 그런 적은 없는데 혹시 앞으로 그럴까 봐요. TV를 새로 사야 하나 해서요."

"아직 그런 적 없으시면 미리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렇겠죠?"

"......."


이 대화 내용을 듣고 픽! 하고 웃음이 났다.

A의 성격을 잘 아니까 이해가 되면서도 웃음이 나는 거다. A는 내가 아무 말 안 했는데도,

"알잖아."

라고 말해버린다. 그래, 자세한 말 안 해도 안다. 낯선 이가 자신의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그 시간 동안 그 사람과 어색하게 있어야 하는 것이 싫었겠지. 무슨 느낌인지는 너무 잘 안다. 누구라도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그 침묵이야 싫겠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뭐 어떤가.


"A야, 그래도 내가 너보단 한 수 위 인가 봐. 난 전혀 모르는 사람하고는 괜찮아."

"그래? 난 쉽지가 않아. 나이가 들어도 이런 건 안 고쳐지네."


굳이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편한 사이가 있는 반면, 잠깐 동안이라도 침묵이 흐르면 그 침묵이 세상 무겁고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항복하고 먼저 그 침묵을 깨는 편인가? 아니면 상대가 침묵을 깨주길 바라는 편인가? 이런 어색한 분위기 속 침묵이 길어지는 순간이 괴로워서 나도 모르게 입에 침이 마를 새 없이 계속 말을 꺼내려한다면, 이렇게 억지로 뭐든 말하려 하는 자신이 싫어진다면, 한 번쯤은 마음속의 나에게 말해봐도 좋겠다.


"No need to fill the silence."







[한 모금 더]

fill the silence

이 표현은, '채우다' 라는 의미를 가진 fill과 '침묵, 고요함, 정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silence의 조합이다. '아무런 소리도, 말도 없는 그 침묵을 (무언가로) 채운다'는 의미이다. 뭔가 시적인 느낌이 든다.



[체크 체크]

no need to: ~할 필요는 없다

= there's no need to

= don't need to

= don't have to


* 문맥상 주체가 명확히 I 혹은 You인 경우에는 주어를 표기할 필요가 없기에 no need to = there's no need to를 많이 쓰지만, 주체를 명확히 나타내고 싶다면 주어를 표기하고 don't need to = don't have to를 쓰자.



[이렇게 활용]

* 해석은 자연스럽게 번역한 것으로, 직역이 아니므로 주의!


You don't need to apologize. It's my bad.

네가 사과할 필요 없어. 내 잘못이야.


No need to get up early. It's my day off today! Wheeee!

나 오늘 쉬는 날이라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지?! 아 신나!


There's no need to wear makeup! No makeup today!

화장할 필요는 없어! 오늘은 민낯이다!


You don't need to stand in line here. C'mon!

당신은 여기서 줄 설 필요 없어요! 어서 (이리로) 와요!


No need to put up with those insults!

저런 모욕적인 말은 참을 필요가 없다구!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역시 편안한 것이 최고다! 사람도 장소도 말이죠. 내가 아무런 말 안 하고 있어도 곁에서 편하게 느낄 수 있는 누군가가 많아지면 좋겠네요.

When you're with me, there's no need to fill the silence. Just enjoy this comfy 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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