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는 줄 몰랐잖아!

I lost track of time!

예전에 수업하면서 가끔 수강생의 말에 심쿵할 때가 있었다.

설마 외모 칭찬? 아니다. 수업 마무리 하면서 과제를 내주려고 하니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갔어?"

수강생이 이런 말을 하면, 바로 이 순간이 심쿵 모먼트이다.


강사로서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이지 기분이 너무나 좋다. 그만큼 그 수강생은 수업에 집중했고, 나와 함께 한 수업이 재미있었다는 얘기니까. 이런 말을 듣고 나면 수업이 다 끝나가더라도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고, 하나라도 더 연습시켜주고 싶다. 어딜 가나 이쁜 말(?)을 하면 떡 하나라도 더 생긴다.


어떤 날은 한창 열을 내서 설명을 해 주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를 내 귀가 캐치하고 말았다.

"아 진짜 왜 이렇게 안 끝나?"

소리의 진원지로 짐작되는 곳으로 매서운 눈길을 보내면서 마이크에 대고 앙칼지게 말해본다.

"아직 멀었어요. 시간 체크하면 시간 더 안 가는 거 알죠?"


며칠 전, 제목에 홀려 나도 모르게 사버린 책이 있다. 제목은 바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이다. 원제는 <THE ORDER OF TIME>. 제목 번역이 탁월했다. 영문을 읽으면 '이 책은 어려울 것이오.'라는 느낌이 빡!하고 오지만, '타임슬립'이나 '멀티버스'같은 SF물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이라는 캐치 프레이즈까지 읽고 나면 '한 번 읽어 봐?'하고 겁도 없이 이 어려운 책을 사게 될 수밖에. 하지만 몇 장 읽어나가면서 자꾸 핸드폰 건드리게 되고, 진도 나가기가 당최 쉽지 않아서 결국 하품하다가 책을 덮었다. 제목처럼 정말 '시간이 흐르지 않고 멈추어 버린 듯', 읽어도 읽어도 난 한 페이지에서 맴맴 돌고 있었다.


물리학이라는 학문에서 보는 '시간'의 개념은 아직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직 난 위 책의 45페이지에 머물러 있다.) 내가 느끼는 시간은 상당히 '상대적'이다. 소개로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 나는 '대화란 하나의 핑퐁 게임'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대가 내게 공을 받을 시간도 주지 않고, 계속 서브와 스파이크를 보내면 탁구채 내려놓고 나가고 싶다. 거기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본인의 회사일이나, 1절만 했으면 하는 본인의 자랑만 계속 늘어놓고 있으면, 나는 생각해 본다. '시간 얼마나 됐지? 내가 들을 수 있는 한계점은 1시간이야!' 솔직히 대놓고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예의상 꾹 참는다.

"관심 없는 당신 이야기 듣기만 하는 건 너무 지루하다고!"


미리 예매를 마치고 며칠 동안 기다렸던 영화를 보러 갔다. 장장 세 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 본래 세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있는 걸 상상하면 너무나도 힘든 일이지만, 기다리고 기다렸던 영화를 볼 땐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눌린 엉덩이 컨디션도 오케이, 세 시간도 완전 순삭! 결국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뒤에서 살며시 빛이 들어오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간 거야? 정말 순식간이잖아?!'하고, 순삭해버린 시간과 내가 그걸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만다.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 몰랐잖아!'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는 일들이 종종 있다.

뭔가 몰두하고 즐거울 때, 또 뭔가 정신없이 일을 해치우고 있을 때, 우리는 늘 시간을 도둑맞는다. 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가 마냥 재밌었던 20대. 마음 맞는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시간 순삭 충격은 수 없이 경험하기도 했었다. 너무 늦지 않게 딱 맥주 한 잔만 하고 들어가자 하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잠깐 있었다 생각했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엄마다. 시간을 안 봐도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인 거다.

"엄마, 나 정말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몰랐어. 지금 들어갈 거야. 진짜 시간 가는 줄 몰랐어!"


"I lost track of time!"






위 영어 표현을 직역하면 '시간이 흘러가는 길을 놓쳤어' 정도의 의미인 것인데,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느낌을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와 한국어는 알파벳부터 어순, 소리까지 서로 너무 다른 언어이지만, 이렇게 비슷한 생각과 표현을 보게 되면 참 재미있다.


[한 모금 더]

track

이 단어는 명사와 동사로 모두 쓰인다. 여기서는 명사로 사용되었는데, 명사적 의미는 (나아가고 이동하는) 길, 방향, 경로, 선로, 경주로 / (이동한) 자취 / 음반 트랙 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체크 체크]

lose track of time v~ing :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다



[이렇게 활용]

*해석은 자연스럽게 번역한 것으로, 직역이 아니므로 주의!


It's easy to lose track of time here.

여기서는 시간이 어떻게 금세 지나갔는지조차 모를 거예요. (여기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는 게 흔한 일이죠. -> 너무 멋진 해변 앞 숙소에서 주인장이 다가와 말을 거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I lost track of time reading this book!

이 책을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잖아!

(흥미진진한 스릴러 책을 다 보고 책을 덮으며 이렇게 말해보자.)


I was so absorbed in playing computer games that I lost track of time.

컴퓨터 게임하는데 너무 집중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컴퓨터 게임 딱 한 시간만 하려고 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을 때 말해보자.)


He loses track of time when he plays soccer.

쟤는 축구만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니까.







친구랑 오랜만에 수다를 떨다가, 또 재밌는 영화에 푹 빠졌다 겨우 헤어 나와서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나 싶을 때, 가끔은 한국말 대신 영어로 이렇게 말해 봐요!

I lost track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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