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타이밍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갔지만, 여지없이 폭염이 느껴지는 뜨거운 여름인 줄 알았는데,
오늘이 입추(立秋)라 한다.
가을이 열리는 날.
절기를 모르는 어렸을 때부터 '입추'는 참 이상했다.
초복, 중복, 말복이 꿋꿋한 기둥처럼 딱 버티고 있는 여름 한가운데서
난데없이 가을이 시작된다니!!!
삼복이 모두 지나고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와도 될 것을,
하필이면, 그 힘센 삼복더위 사이를 기어이 헤집고 오는 가을.
어른이 되고 보니 여름의 절정, 그것도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태워
가장 뜨겁게 불 탈것 같은 말복을 지척에 두고 가을이 오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아무리 여름이 뜨겁고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가을은 어떤 경우에도 오고야 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초복, 중복, 말복이 모두 지난 후, 당연히 등장할 차례가 되어 온다면,
입추가 이다지 반가울 수 있을까?
뜨거운 여름 공기 사이로 언뜻언뜻 느껴지는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이렇게 반가울 수 있을까?
입추의 존재 자체보다,
입추가 등장하는 이 절묘한 타이밍이 생각할수록 감탄스럽다.
그래서인지, 입추의 등장은 소망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뜨겁고 힘든 여름 가운데 있다 해도 이것이 곧 끝날 것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것만 같다.
해뜨기 직전에 가장 어두운 새벽하늘처럼,
폭염을 뚫고 찾아온 입추는 앞으로 남은 여름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견딜 수 있게 한다.
그 귀한 절기, 입추의 등장을 놓치지 않고 감탄할 수 있어 감사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