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는 어림없는,
"안 돼, 먹지 마, 유통기한 지났어"
"엄마는 왜 먹어? 엄마도 마시지 마"
"하루 이틀 지난 건 괜찮다!"
.
.
.
"그럼 내가 마셔도 되겠네?"
"너는 안 되고!"
빛의 속도로 되돌아오는 엄마의 대답.
분명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선언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엄마는 그걸 본인이 먹는 걸까?
그냥 버리기 아까와서일까?
유통기한 지났다던 남은 우유를 마시는 엄마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냉장고 안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나 요구르트를
발견할 때면, 내가 얼른 먼저 먹어버리곤 했다.
'먹어도 된다고 했으니까.....'
매일 새 밥과 새 반찬으로 하루의 끼니를 준비해 주시는 엄마는
늘 주방에서 분주했다.
나와 동생은 당연한 듯 매일 그런 밥상을 받았고,
아빠는 엄마의 요리솜씨,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맛이라 칭찬하셨다.
그런데 그런 밥상에서 엄마의 자리는 거의 비어있었음을
나는 지금에야 알아본다.
우리가 당연한 듯 그 밥상을 받아먹을 때에도
엄마는 어질러진 주방을 정리하고 때때로 모자란 반찬을 리필하고,
그때 그때 가장 알맞은 굽기로 먹을 수 있도록 고기를 구워주느라,
여전히 엉덩이를 붙일 틈이 없었다.
엄마가 당신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때는
우리가 식사를 거의 마칠 때 즈음이 곤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처음의 정갈하고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던 요리와 반찬들은
죄다 흐트러졌고, 비어있는 접시들마저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놓여있었다.
엄마 본인을 위해 따로 덜어놓은 반찬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앞치마를 채 벗지도 못한 채 엄마는 그렇게 가족의 막마지 식사시간에나
합류하여 흐트러진 반찬 사이에서 당신의 식사를 시작하곤 하셨다.
엄마에게는 그렇게 전쟁 같은 식사 시간.
그것이 끝나도 끝이 아니었다.
식탁 위의 빈 그릇이며, 반찬들을 모두 정리하고
다시 그릇을 씻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정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내가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나 요구르트를 먼저 마셔버린 것은
엄마가 그것을 먹는 것이 단지 싫어서만은 아니었다.
그 모든 밥상의 수고를 하루도 빠짐없이 오롯이 홀로 해내면서도,
"당신의 위한 온전한 밥상" 한 번을 갖지 못하는 엄마에게 미안해서였다.
우유나 요구르트마저 유통기한을 지난 것을 먹어야 한다면,
그것은 엄마에게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어린 나에게 주방에서 엄마가 하는 모든 일들은 "어른"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 틈에서 내가 감히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를 못했다.
그나마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나 요구르트를 먼저 먹어 버리는 일이 고작이었다.
우유나 요구르트 만이라도 "온전한" 것으로 드시기를 바랐던 마음뿐이었다.
엄마가 되고, 매일 가족의 밥상을 차려내야 하는 지금에야
나는 뭔가 늘 풍성했던 우리 가족의 식탁,
그리고 대부분은 비어있던 엄마의 자리가 보인다.
엄마 말이 맞다.
고작 며칠 지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는다 해도
당장 문제는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당신이 먹어버릴지언정,
가족에게는 단 한 입도 허락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아무리 괜찮다 유혹한들, 엄마의 마음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된 나는 유통기한의 유혹에 꽤 쉽게 넘어가 버린다.
"엄마아~~~~~"
"왜?"
"이거 유통기한 지났는데? 안 먹을래요"
"에이, 하루, 이틀 정도면 괜찮아, 먹어도 돼~~~"
"싫은데요"
"뭐?? 괜찮다니깐, 지금 빨리 먹어버려~~~"
"(아들 어이없는 표정)........."
.
.
.
아.... 심지어 "빨리" 먹으라고까지....
아들은 나중에 유통기한을 보며 이런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가족들에게만큼은 철저하게 유통기한을 방어했던 우리 엄마를 생각하니
내 모습이 조금은, 아니 몹시도 부끄러워진다.
아들, 미안.
이제는 유통기한 관리 잘해 놓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