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구정이 낼 모레라지만.....
1월 1일이 주는 강렬함 덕분인지 분명 새 해는 이미 한참 지났다고 본다.
그런데도 아직 주변 정리를 못했다는 건 영락없는 핑계임을 안다.
나이가 들어가니, '정리'는 '버리기'가 된다.
학창 시절 책상 정리, 업무 할 때 자료 정리는 가르기와 모으기가 기본이었다.
모든 물건들을 펼쳐놓고 목적과 필요대로 분류해서 모아놓기.
하지만 살림을 주관하는 입장에서 정리_ 특히 집안 정리는 이런 가르기, 모으기로는 해결이 안 된다.
무조건 버리는 것이 있어야 '정리'가 되는 것이다.
오늘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무장하고 그릇장 앞에 섰다.
거실 장 안쪽까지 귀하게, 혹은 상자채 곱게 모셔놓은 그릇들을 보며 또 마음이 심란하다.
왜 요즘 그릇들은 깨지지도 않는가..
멀쩡하게 새것들을 버리자니 엄두가 안 난다.
엄마가 시집올 때 해 주신 풀 디너 세트가 자그마치 3 세트나 된다.
화려하고 빛나지만, 무겁고... 무엇보다 어울리게 담아낼 요리를 못한다.
하지만 엄마 얼굴이 떠올라 버리질 못하겠다.
그러다가 괜히 신발 장 앞을 서성였다.
맨날 운동화만 신고 다니는데, 왜 신발장은 가득 차 있는가?
그러다 맨 아랫칸 박스를 발견한다.
아가 신발, 아가 스케이트... 장난감처럼 앙증맞은 것들이 소품처럼 담겨있다.
아들의 첫 신발과 좋아했던 샌들, 첫 스케이트이다.
'걸음마의 추억이 있는데, 이건 못 버리지...'
드레스룸 안으로 이동, 아래 수납함에 크고 묵직한 상자들이 보인다.
진짜 이건 버리리라 생각하고 힘겹게 상자를 꺼내 열였다.
'아, 어쩜 이렇게 색이 곱지?... 하나도 안 변했네...'
결혼할 때 엄마, 아빠가 해 주신 한복이다.
늦게 결혼하는 딸, 한복 입은 모습을 보며 기뻐하셨더 아빠, 엄마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건 안 되지, 흠... 근데 이건 정말 이제 입을 일이 없는데...'
나는 변명처럼 이 오랜 한복의 용도 찾는 일에 골몰했다.
빛바램 하나 없이 새 것 그대로라는 명분보다 더 강력한 뭔가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마침내 반짝! 이는 생각을 붙잡았다.
'나중에 내 수의로 써야지."
왜 이런 생각까지 했을까?
이 세상 눈감고 죽는 날 아빠, 엄마가 해 주신 이 눈부신 한복을 입어야겠다는...
미련일까?... 억지일까?...
딱 버리려던 마음은 오히려 '버렸으면 큰 일 날 뻔'으로 변하고 말았다.
.
.
.
.
.
.
아.... 나는 결국 맘먹었던 정리는 하나도 못했다.
정리를 하려면 버려야 하는 건 맞는데,
일단 '정리 못하는 마음'을 먼저 정리해야 할까 보다.
망설임 없이 버리는 방법이 있나요?
'설레지 않는 것은 다 버려라', 이런 거 소용없어요.
다 설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