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뿐일까
~AI 덕분이라 해야 할까?
~AI 때문이라 해야 할까?
<학생 30명 에세이를 AI가 2분 만에 평가..."이렇게 써야" 조언도>
한 신문사의 기사 제목을 보는 순간 스치는 생각이었다.
과거에도 컴퓨터나 ICT 활용교육, e-learning 등의 이름으로 첨단 기술을 교육현장에 활용하려는 시도는 늘 있어왔다. 그러니 AI 시대에 AI를 활용하자는 것은 그다지 참신한 주장은 아닌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늘 비슷한 목소리를 들어온 것도 마찬가지다.
교육 본질을 해할 것이란 우려, 선생님의 자리, 교과서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란 우려, 학생들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 등등. 컴퓨터 등장 초기부터 있어왔던 우려의 목소리는 AI를 활용하자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유.난.히 불안과 두려움의 심정으로 교육현장에 성큼 들어온 AI의 발소리를 듣는다.
얼마 전 개최된 세계 최대의 에듀테크 박람회 ‘벳쇼(Bett Show)’에서는 ‘올렉스 AI(Olex.AI)’라는 문학교육 인공지능이 등장했다고 한다.
한 학생이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구두쇠 스크루지)’ 소설을 읽고 글을 썼는데, 이 올렉스 AI가 분석해 주기를,
“(소설 속) 스크루지의 감정을 ‘깃털처럼 가벼운’이라고 비유했네요. 이 소설을 관통하는 ‘고통’이란 주제를 더 잘 드러낼 다른 비유를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내 글에서 '고통'이란 주제를 더 잘 드러내어 보라고???....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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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의하면, "산업화 시대 가난 때문에 겪은 고통으로 돈에 집착하게 된 스크루지의 배경을 토대로 다른 비유를 찾아보란 뜻이다. 그러면서 AI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1837~1901년)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등장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분석해 글을 보완해 보아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전시회에 참석했던 선생님과 학부모들은 학생 30여 명의 에세이에 대해 2분 만에 "소설의 사회·역사적 배경을 분석해 표현까지 첨삭하는 AI는 처음 봤다”며 놀랐다는 소식이다.
뿐만 아니라, 강의 자료를 수 초 내에 만들어 내는 ‘AI 스파크(AI spark)’ 학생의 성적과 적성을 분석해서 진로설계를 돕는 AI ‘파워버디(Power buddy)’ 등도 함께 등장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러한 AI의 화려한 등장은 과거 어떤 기술보다 더욱 파워풀하고 실질적일 것이며, 게다가 매우 효과적일 것이란 예측, 두렵지만 거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글을 첨삭 한다는 것은, 생각을 첨삭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내 사유를 깎고 다듬에 완성한 글에 대해 AI가 ‘고통’이란 주제를 더 잘 드러낼 다른 비유를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라고 첨석해 준다면 아마도 나는 고통이란 주제를 더 골몰히 생각하며 AI의 조언대로 다른 비유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역사적 배경을 추가하라 했으니 아마도 추가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첨삭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그것은 나의 사유가 될까? AI의 사유가 될까?
나는 이것이 두렵다. 내 글이 될까? AI, 그 기계의 글이 될까?
내 글의 정점에서 드러나는 나의 정체성, 그 정체성의 순수(純粹)가 최첨단의 막강한 '기술'의 도움으로 '훼손'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은 왠지 불순물처럼 느껴진다.
나와 같은 영혼을 가진,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에 의한 조언은 내 사유를 깨는 도끼와 같을지라도 기꺼이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좁은 세계관과 굳어버린 사유를 깨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기꺼이.
이 또한 나의 편견일까 의심도 해 본다.
아무리 최첨단의 지능을 탑재했다 할지라도 AI를 단순히 '기계 덩어리'로 치부해 버리는 것? 제2의 두뇌라고 인정해 줘야 하는 것일까?
쳇 GPT에게는 여행정보를 구하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시시콜콜 물어 답을 얻어내고 잘도 이용하면서, 그냥 이용뿐인가? 감탄하고 칭찬도 해 준다. 그런데 내 글을 첨삭해 준다는 문학 AI에게는 이렇게 발끈하는 것은? 나의 비좁은 식견 때문일까? 내 속의 모순일까?
아마도 우리를 둘러싼 하드웨어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의 소프트웨어와 관련한 다른 영역에서도 AI는 기어이 등장하고야 말 것이다.
지금 나는 내 글을 AI가 첨삭하고,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검열까지 가능하리라는 예견에 몹시도 불편한 심정이지만, 인간성 본질로까지 밀고 들어올 AI의 기세를 마주한다면, 어찌 대응할지, 아직도 막막한 심정이다.
미리 입장 정리를 해놓지 않으면 나는 보기 좋게 문학 AI의 종속된 인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껏 AI는 정보분석의 도우미, 일상의 조력자이었기에, 우리는 서로 친절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AI, 네가 '평가'의 영역까지 들어온다면, 그건 아니지.
서로가 호감 어린 얼굴로 즐겁게 웃으며 마주할 수만은 없겠지.
그건 선을 넘는 것이지. 적어도 아직은 말이야.
https://www.chosun.com/national/education/2025/02/01/SNWKG35TSJCPZP4I774YL4ZO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