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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

돌파구 앞에서

by 소리



"왜 이렇게 빨리 안 끓지?"

온도를 최대로 놓이고 냄비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송골송골 가장자리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나는 동그랗게 흰 자로 감싸진 수란을 생각하며 달걀을 톡 깨어서 물속에 떨어 뜨렸다.


곧바로 휘휘 저었지만, 앗,,,, 역시나 수란 만들기 실패다.

흰 자는 물속에서 바로 응고되지 못하고 풀어져 버렸다.


황급히 풀어진 잔해들을 건져내고, 새로운 계란을 톡 깨서 넣었지만,

이미 풀어진 흰 자 탓에 깨끗하고 깔끔한 수란은 물 건너갔다.


아, 어째서 그 10초, 20초 남짓한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까?

전기포트의 물도 그렇다.

손잡이를 붙잡은 채 초조하게 기다린다. 결국 탁, 하는 소리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물을 부었지만, 이 정도면 뜨거워졌겠지 하는 예상과는 달리 미지근한 온도...

아, 급한 마음으로는 제대로 된 완성품을 볼 수가 없다.



물은 99도에서 1도가 될 때, 가장 많은 열을 흡수한다고 한다.

그 열에너지로 수소와 산소 원자 간의 결합이 끊어지고 물에서 수증기로 상태가 변한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끓는점에 이르면 더 이상 열을 흡수하지 않고 온도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한다.


물의 입장에서 보면 0에서 99도 보다 마지막 1도가 그의 존재 여부에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해야 1도를 올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100도의 끓는 점까지 도달해야만 수소와 산소의 매듭을 끊고, 전혀 다른 새로운 물질로 재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1도 앞에서 물이 벌이는 이러한 사투를 무시하고,

날달걀을 풍덩 넣어버린 나의 경솔함을 깊이 반성한다.







망쳐버리는 것이 수란뿐일까?

마지막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일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이 진짜 마지막 순간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물이 끓어오르는 것은 송골송골 방물이 맺히기 시작하니, 곧 끓어오를 것임을 짐작하고 기다릴 수 있지만, (물론 보면서도 못 기다리는 어리석은 경우도 있다) 우리 인생 사건들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도대체 돌파구가 없어 보이는 길인데, 어디까지 가야 할까?

생각보다 더 힘이 드니 이쯤에서 멈추고

이 정도도면 됐다해서 멈추고,

때로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해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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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 are running out of patience,

Think of this ; "What if I'm in the verge of a breakthrough?"


여러분의 인내심이 바닥날 때, 이 생각을 해 보세요.

"만약 내가 돌파구 직전에 있다면요?"


<하루 한 장 영어일력 365>, 넥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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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f는 믿음일까? 가정일까?

우리가 걷는 길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What if는 '믿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포기하고 싶은 지금이 어쩌면 돌파구 직전일지 모른다는 믿음,

곧 결승점에 곧 도착할 것이란 믿음,


실망하고 낙담하여 손 놓아버리려는 지금 나는 돌파구 직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1도만 더 올리면 되는데, 포기하겠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어떤가?

그렇게 1도씩만 올리다 보면 언젠가는 분명히 돌파구 앞에 서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을 살든지 마지막 1도의 힘을 잊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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