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성적표 뒤에는

담대함으로 피는 꽃

by 소리

J야,

오늘 너의 2학기 성적표를 보니, 이제야 우리 아들이 고등학생으로 처음 1년을 무사히 잘 보냈구나

실감이 나더라.

엄마는 모든 과목에서 Pass를 받은 너의 성적도 기쁘고 고마왔지만,

성적표를 보여주는 너의 얼굴이 진심 기뻐 보여, 그 모습이 더 기뻤단다.


그런데 한편으론 환하게 웃는 너의 미소 뒤에 엄마인 내가 알지 못했던

눈물과 아픔도 있지 않았을까 마음이 짠하기도 했어.


오늘 너랑 얘기를 좀 하고 싶었던 건,

엄마도 너와 같은 고등학생 시절을 겪어보니


그 시절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그래서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해야 하는지,

여기서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 것이 인지.


이런 이야기는 아니야.

이런 말들은 그저 '엄마의 불안'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란 걸 깨달았으니까..


다만, 오늘 너와 얘기하고 싶은 이유는, 과거의 어느 때처럼

또 한 발 늦은 엄마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너의 마음을 물어봐줄 타이밍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야.




All Pass의 뒷면.


어떠니, J야.


우리 All Pass의 자랑스러운 성적표는 잠시 접어두고 이야기해 보자!


혼자 공부하는 시간 동안,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를 너무 힘들게 하지는 않았니?...

'천재'라 불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괴롭지는 않았니?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구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힘겹게 붙들지는 않았니?

잠을 깨려 고용량 비타민 음료나 커피를 밥대신 먹으며 밤새 버티진 않았니?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 애써 감추고 태연한 목소리로 엄마의 전화를 받진 않았니?

.....




기차역에서 본 너의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어 엄마는 참 마음이 아팠단다.

All Pass인 너의 성적표의 이면에는 이런 아픈 시간들이 있었을까 엄마는 자꾸만 성적표를 만지작 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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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스펙트럼


엄마가 살면서 되돌아보니,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 점수나 대입시험 결과가 인생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우리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간은 그닥 길지 않더라.


살다 보면 그것 말고도 크고 작은 일들이 우리 인생을 바꿔놓기도 하고, 결정짓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터닝포인트가 돼서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기도 하고...


인생 긴 시간 스펙트럼에서 보니

대학입시는 분명 눈에 띄는 고비이긴 하지만, 많은 결정적인 고비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더라고.


엄마가 이런 말을 해 주는 이유는 그러니 학교 시험이나 대입에 대해서 전혀 부담 갖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고, 그 상황을 지금보다 더 '담대하게’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램에서란다.




흔들리며 피는 꽃, 담대한 마음


설악산 기억하지?

크고 높은 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 보이는 건 그것이 가장 앞에 있기 때문일 뿐이야.

그 뒤로 얼마나 많은 봉우리들이 겹겹이 자리를 잡고 거대한 풍경을 이루고 있었니?..


인생도 마찬가지더라.

지금 내 앞에 있는 고비가 너무 커 보이지만, 그건 그저 당장 내 앞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거든.

그 뒤로도 넘어야 크고 작은 고비들이 있어.

그들을 넘어가면서 너는 성장하고, 성장해서 마침내는 너의 꿈을 이루게 될 거야.


그러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대학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로 너의 온 마음과 몸을 힘겹게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넘어야 할 많은 고비 중 하나일 뿐이라고 담대하게 바라보렴.


스크린샷 2024-01-11 165126.gif 사진: Unsplash의 Rohit Tandon



좀 극단적으로 말해서,

행여나 네가 대입에 실패했다 해도 엄마는 이와 같은 말을 해 줄거라 생각해.


어떤 실패 하나가 너의 인생 끝까지 절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

첫 번째 실패했다 해도 두 번째 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정도의 고비야. 대입 시험이라는 건.

앞으로 살다 보면, 두 번째 기회가 오지 않는 고비들도 꽤 있거든.


어떠니? 그것들에 비하면 오히려 쉬운 고비라는 생각도 들지?

그러니 시험도 마찬가지지만, 앞으로 네가 겪게 되는 모든 고비들은 고통과 좌절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라고 생각해 보렴.

그것이 담대한 마음이란다.


너도 어쩌면 들어봤을 시를 하나 보여줄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느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알에이치코리아, p.112>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기도 하지만, 결국은 꽃을 피우고 마는 것처럼

앞으로의 너의 인생도, 엄마의 인생도 그럴 거야.


그러니 All Pass의 성적표에 너 자신을 묶어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여기서 조금이라도 내려가게 될까, 한 번의 실수로 실패하게 될까

너의 남은 고등학교 생활이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으로 채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혹시나 성적표 뒤에 있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큰 아픔이 있었다면,

흔들리는 꽃이려니, 비에 젖은 꽃이려니 생각하렴.

너의 꽃은 줄기를 곧게 세우고, 따뜻한 꽃잎을 피우게 될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에 젖은 듯 오늘이 힘겹다면

엄마가 오늘 말한 ‘담대한 마음’을 떠올려 보길 바랄게.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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