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 Jan 31. 2024

08_선생님의 말(2)

지금도 살아있는,

많은 선생님들이 선한 영향력으로 나의 성장기에 영향을 주셨지만,  아직도 가끔씩 생각날 때면 그때의 한없이 작아지던 내 마음을 보게 되는 그런 말들도 있었다.  


그것이 지금의 내 정서와 태도와 세상을 보는 시선에 '좋은' 혹은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둘 중 하나로 단순히 말할 수는 없겠지만, 살아온 세월이 쌓여도 이렇게 가슴에 남아있는 걸 보면 그냥 흘러가 버린 말들은 아닌 것 같다.


 





# 1.


"너 그렇게 바빠서 우리 반은 제대로 챙기겠니?"


담임 선생님은 나를 향해 나무라듯 말씀하셨다. 

분명 그랬다.  책망의 소리.

걱정스러운 말투가 아니라 엄마에게 듣는 잔소리 같은 느낌.

아침 조회가 끝나고 1교시 시작 전이었지만, 그날 따라 교실은 왜 그리 조용했을까? 


아니 조용하다 느꼈던 걸까? 선생님의 목소리는 교실 끝까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의욕이 넘쳤다. 나름 어마한 경쟁을 뚫고 합격한 방송반이었다.

방송반 배지를 오른쪽 가슴에 달고 등교하는 나의 자부심은 이른 아침부터 꼬박 방송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만큼 대단했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은 종종 아침 자습시간까지 자리를 비운 반장이 못마땅하셨던 참이었을까? 

그날은 곧 있을 학교 축제 무대에 사회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담임 선생님께 전하던 차였다.


”너 그렇게 바빠서 우리 반은 제대로 챙기겠니? “

 1학년 대표로 사회를 보게 되었으니 담임 선생님도 기뻐해 주실 줄 알았는데.... 

’아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나 보다...‘


'교실에서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반장'이 문제였을까? 

반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했던 결과가 없었음에도 앞으로 그럴까 미리 염려하는 선생님의 불안이 문제였을까?


바쁜 나에 대한 선생님의 책망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바로  스스로에 대한 책망으로 돌아왔다. 


그날 아침 나는 의욕적으로 하던 방송반 활동도 줄이며 ’ 선생님 말 잘 듣는 ‘ 학생답게 행동했다. 

학교 축제 무대 준비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선생님으로부터 개인적인 ’ 책망의 말‘을 들었다는 그 사실이 꽤 충격이었을 뿐,  그것이 과연 합당한가에 대해 판단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나 자신에 대한 수치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하며, 서둘러 뒷수습을 하고자 할 뿐이었다. 


그 후 나는 ’ 나도 선생님을 실망시키는 존재가 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에 선생님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는 학생이 되었다. 선생님께 그런 존재가 될까 염려되어 학교에서 오히려 내 행동의 폭은 좁아졌다. 


여기저기 눈에 띄는 내 이름보다는 성적 석차 상위에 내 이름을 올리는 것을 선생님께서는 더욱 만족해하신다는 생각으로 남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특별한 스토리 없는, 모범생들이 보냈을 법한 그런 건조한 고등 시절의 기억이 남았다. 


만약 그때 선생님이 미간을 찌푸리는 대신 활짝 웃으며 '정말 축하한다,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다면, 내 학창 시절은 더 많은 스토리를 가질 수 있었을까? 





#2.


"꽃도 생명인데, 비싸다고?"


 스승의 날이었다. 


우리 반은 특별히 이번 학기 새로 오신 사회 선생님을 좋아했다. 


남자 선생님이란 사실만으로도 꽤 관심을 끌었지만, 우리는 그분의 간결함에도 핵심적인 노트 정리에 감동하고, 위트 있는 몇 마디 말들에 기쁨의 웃음보따리를 터트리곤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사회 선생님께는 뭔가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는데 동의했고, 그래서 각자 한 명씩 카네이션 한 송이 혹은 두 송이씩을 준비해 와서 모두 모아 커다란 꽃바구니를 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만든 꽃바구니는 제법 크고 풍성했기에 우리는 잔뜩 기대감을 품고 선생님께 꽃다발을 안겨드렸다.


 역시나 꽃다발만큼이나 큰 미소로 기뻐해 주시던 선생님.


”선생님, 우리 반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꽃다발 엄청 비싼 거예요~ ”

우리 반의 특별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였을까? 나는 반 대표로 이렇게 대본에도 없던 사족을 덧붙여 버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스치던 사회선생님의 굳은 표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리고 이내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도.


 이 꽃도 생명이잖아. 고기나 생선과는 다르게 아직 살아있는 생명이야.  
우리가 생명 하나를 1,000원에 산 건데 비싼 걸까?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어설픈 포장지에 둘러싸여 있던 싱싱한 장미꽃들이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질 않았다. 

괜한 말을 덧붙인 내가 창피해서 숨어버리고 싶었다. 포장지에 싸인 채 힘없이 모여있는 꽃들처럼 나도 순식간에 시들어 버린 듯 느껴졌다.


 나는 지금까지도 꽃다발을 살 때면 선생님의 이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내가 이 생명을 이 가격에 사는구나.라는 생각에 좀처럼 ’ 깎아주세요 ‘라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가격이 과하다 생각될 때면, ’ 비싸네요 ‘라고 소심히 한 마디 해 볼 뿐이다.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은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다. 

누가 봐도 깎을 값을 생각하고 턱없이 높게 부르는 가격임에도 그저 지갑을 여는 나를.


고작 옛날 선생님 말 한마디 때문에 평생 꽃 값을 못 깎는다고? 

그렇다. 나는 아마도 앞으로도 평생 꽃 값을 깍지 못하는 사람이지 싶다.


v



#3.

 

"우리 반 반장 엄마는 뭐 하시나?"


나는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내 눈을 피하지도 않고 똑바로 응시하셨기에 나는 그 불편한 눈빛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역사 시간. 다음 주는 시험시간이었기 때문에 진도 빠른 우린 반은 자습 중이었다.

시험 전의 조용하고 적막한 교실은 한 여름 뜨거운 공기로 인해서인지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는 듯 쳐지는 느낌이었다. 


”옆 반은 반장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돌려서 나눠먹었다는데,
우리 반은 이 더위에 수박 한 통이 없네, 참...”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쳐다보는 나와는 달리 주위 친구들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선생님의 말을 친구들이 못 들었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왜 그리 무안하게 아무 말도 못 하고 어쩔 줄을 몰라했을까?

우리 엄마를 향한 말인가? 나를 향한 말인가? 내가 엄마에게 전달하라는 말인가?


나는 그 순간 엄마 생각을 하자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올 해가 딱 10년이다. 

10년 동안 엄마는 학교 다니는 나에게 최선을 다했고, 매년 임원을 맡아오는 딸 덕분에 온갖 학교일도 도맡아 해 오셨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미안한 줄도 몰랐다. 

엄마도 기쁘게, 당연히 그 일을 해 주시는 줄 알았다. 

매번 선생님들의 감사인사에 엄마가 어쩔 줄 몰라하며 기뻐하셨던 기억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의 이 말 "반장 엄마는 뭐 하시나?"를 듣는 순간, 엄마의 마음이 그게 전부가 아니었겠구나 느껴졌다.

선생님의 이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엄마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그렇게 밤새다시피 선생님의 소풍 도시락을 싸고, 간식을 준비하고,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상담을 하러 오고, 학교 회의에, 바자회에, 운동회에, 아무리 작은 행사에도 그렇게 열심히 참여해 주셨던 걸까?


나는 그날 엄마에게 선생님의 그 말을 전달해야 하나 백만 번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에게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은 지난 10년간의 엄마 노력에 빛을 잃게 하는 말이었고, 한결같이 최선을 다했던 엄마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이 될 것이라고, 18살의 나는 그리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학부모가 되니 내 아들도 임원이 되는 날이 왔다. 

그 기쁜 순간에 왜 하필 그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을까? 

반장 엄마의 성의 없음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당당히 말씀하시던 그 말.


그때 나는 상처를 꽤 받았나 보다. 

지금도 그 말이 나와 엄마를 향한 화살인 듯 느껴져 아들 덕분에 ’ 회장 엄마‘가 되었을 때도 나는 나의 처신이 혼란스러웠다. 







살아있는 씨앗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인생을 바꾸게 되었다는 학생들, 젊은이들의 감동 깊은 스토리에 나는 특히나 집중하게 된다. 스토리의 재미를 위해서 MSG를 가미했거나 극적인 요소를 위해 과장되어 표현한 것이 아닌, 그들의 진심을 안다. 


나 또한 성인이 된 지금까지 그 말들의 영향을 꽤나 받고 있는 사람이니까.


 당시의 그 말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인지, 지금 조금 세게 두드리는 것일 뿐인지, 아니면 내 마음속에 화살이 되어 깊이 꽂히는 것인지 막상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살아갈수록 내 삶의 태도와 방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선생님 말이 그냥 씨앗이 아니라, 분명 살아있는 씨앗인 이유가 이런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 속에서 이렇게 자라나는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다.





내게 이런 말들을 남겼던 선생님들은 알고 계실까? 

그 말 덕분에 혹은 때문에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선생님의 말이란 참으로 무거운 것이구나, 또 무서운 것이구나... 새삼 느껴지는 오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7_선생님의 말(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