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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Feb 06. 2024

엄마의 별이 엄마였음 좋겠어

내가 아니라,

(이전 글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요)




담임 선생님의 '반장 엄마가 말이야~' 발언.


지금의 나라면 눈물 참으며 앉아만 있지 않았을 그 말을 엄마에게 전하지 않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나는 내 학창 시절, 엄마의 10년 노력과 정성을 그렇게 수치스러운 말 앞에 꺼내고 싶지 않았다.




낯선 엄마, 나를 보지 않는.


나는 결혼할 때 내 사진은 친정에 놓아두고, 부모님 사진만 몇 장 챙겨 왔다.


그때 챙겨 온 엄마의 사진은 가족사진이 아니었다.

엄마가 결혼하기 전, 할머니 집 마루에 걸터앉아 수줍은 듯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우연히 발견한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지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엄마는 풍성한 볼륨을 가진 멋진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요즘 ’ 단발머리가 어울리는 연예인‘들에게나 볼 법한, 그 시대 여성들을 상상할 때는 떠올리기 힘든 스타일의 멋진 단발! 

살짝 짧은 스커트와 단정한 스웨터는 엄마의 풍성한 단발머리를 더 돋보이게 해 준 탁월한 코디였다.


아, 엄마!


나는 이 사람이 우리 엄마야? 라며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전에 사진 속 멋진 아가씨가 엄마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지금과는 180도 다른 모습, 우리 '엄마'의 모습인 아닌 젊고 아름다운 주인공 같은 엄마를.

그러나 사진 속 엄마는 나를 향해 웃고 있었지만, 나를 보는 건 아닌 낯선 느낌이었다.


어떤 사진을 봐도 엄마는 늘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듯 느껴졌는데, 이 사진 속 엄마는 나의 존재를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느껴졌다.  환하게 밝은 미소 가득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눈빛의 초점은 내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향해 마주하는 웃음을 지을 수가 없었다.

엄마를 누구를 보고 웃고 있었던 걸까?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음에도



왜 그리 눈물이 왈칵 쏟아졌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엄마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 사진을 몰래 내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 두고 가끔씩 꺼내보곤 했는데, 역시나 그때마다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도 엄마가 아닌 시절, 이렇게 꿈 많고 설레는 청춘,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았던 때가 있었구나. 

엄마가 아니라, 당신의 이름으로 불렸던 시절이. 


 이런 엄마를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음이 죄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엄마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우리 엄마였으려니... 

사진을 보는 순간에야 나는 지금껏 엄마의 존재를 그리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와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지만, 못난 내 모습을 마주칠 수 있었다.


살면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조심하고 신중하며 최선으로 노력해 왔는지... 

카톡 몇 줄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최대한 친절하게, 정중하게, 감사도 부탁도, 미안한 마음도 빈번히 표현하면서 말이다.


이런 기특한 노력의 절반도 엄마에게는 기울이지 못했다.  

엄마는 ’ 원래‘ 그런 사람인 것처럼, 당연히 내가 받아야 할 바를 주고 있는 존재인 것처럼... 


엄마는 외롭지 않았을까?


온갖 보살핌을 다 받아 살면서도 한 번도 엄마의 꿈을, 빛나던 순간을, 과거의 영광을 묻지 않았던 가족들이 원망스럽지는 않았을까? 엄마라는 이름이 지긋지긋하지 않았을까?


 반백 년이 넘는 시간이다. 


엄마가 아닌 자신의 모습에는 관심도 없는,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는 가족들 틈에 사는 것, 

그런 가족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온통 내어 주며 살아온 세월이 말이다.


만약 한 마디라도 그런 마음을 건드려 주는 가족이 있었다면 

엄마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을지 모를 일이다.




 


엄마의 별


언제나 나를 두렸게 했던 생각. 

'좋은 엄마' '헌신적인 아내' '착한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사는 대가로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점차 소멸해 가는 나를 보는 그 두려움을 

엄마도 느꼈을 것이란 생각을 왜 못했던 걸까?


 엄마는 이제 8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다.

엄마에게 남은 배터리는 아마도 빨간색 경계 수준일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물어봐 주고 싶은데, 너무 늦었을까 겁이 난다.


엄마, 엄마가 지금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야?

아빠 건강, 식사 챙기고 자식들 염려하고 손주들 위한 일들 말고... 


'엄마 이름만으로만 하고 싶은 일' 말이야.


내가 도와줄게, 한 번 해 봐.

나랑 같이 해 봐.


 엄마의 별이 엄마였으면 좋겠어.


아빠가, 자식들이 엄마의 별이 되지 말고, 

그렇게 빛나던 엄마가 지금, 여기서도 빛나는 별이였음 좋겠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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