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일상에 말랑한 영감을

네 속이 거인이 깨어날지도

by 소리

J야,

다음 학기 너의 시간표를 보다 언뜻 눈에 들어온 "재즈의 이해"!

음악 시간 정말 재미있겠다는 말에 너는 바로 얼굴을 찌푸리며 음악 시간이잖아요! 라고 대답했지...


엄마가 같이 미술수업을 들었던 분들 중에 교수님이나 회사 임원이나 혹은 공직자로 계시다 퇴직하신 분들이 몇 분 계셨거든. 나름 인생에서 성공하신 분들이신데, 다들 격하게 공감하며 후배들에게 해 주신 말씀이 있어..


나이가 들수록 건강 다음으로 예체능이 중요합니다
예체능을 즐길 수 있는 거 말이죠


수십년을 끊임없는 자기계발로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신 분들인데, 그 분들이 하나같이 어떤 능력보다도 인생에서 예체능이 중요하다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을 거야.


말씀하신 '예체능'이란 것은 아마도 "퀘렌시아"같은 것이 아닐까?

투우 경기 알지? 퀘렌시아는 투우사랑 싸우던 소가 잠시 숨을 고르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해.

음악이나, 그림 혹은 체육활동이 그 분들의 쉼없이 달려온 인생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인생의 퀘렌시아' 가 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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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눈에 보였던 혹은 보이지 않았던 너의 시선



너는 아직 ‘나이가 들수록’에 해당하지 않으니 실감하지 못하겠지?..^^

그런데 오늘은 너의 무척이나 건조?해 보이는 일상에 촉촉한 봄비가 참 절실하다는 생각에

미술 수업듣던 그 분들의 말씀이 생각났고,

그래서 너가 싫어하는 과목, 특히 음악,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어.


어렸을 때부터 너는 신나는 리듬을 들으면 장소에 상관없이 온 몸으로 춤을 추며(원래 애들은 다 그런건지도) 좋아하고, 그림과 관련된 창작 활동을 하는 것에도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거든.

그런데, 중학교 시작 즈임이었을까? 어느 순간엔가 부터 너가 이들 과목을 싫어하기 시작하더라구.


엄마는 아직도 기억해.


수행평가를 위해서 꽤 어려운 리코더 곡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던 모습을.

코로나로 등교도 못하던 시기라 동영상을 게시판에 올려야 했으니까 엄마는 카메라를 통해 너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단다.

무나 양배추를 자르면 단면이 보이지?

그렇게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네 속의 단면을 보는 느낌이랄까?

아직은 어리다면 어린 나이인데, 이 아이는 참으로 자기 일에 진중하고 열심이구나.


기타를 처음 배우고 짧은 곡을 연주할 때도 그러했지.

자꾸 힘이들어가 불편하게 굽어지는 손가락을 참아내며 끝까지 반복하고 연습하던 모습.


뮤지컬 시간에는 영상이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제대로된 뮤지컬을 접하게 되었잖아?..

‘영웅’이라는 제목이었나?... 너는 그 때 뮤지컬을 매력에 빠져서 코로나가 끝나면 현장에서 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어.


미술 시간에 너는 참 특별해 보였단다.

소묘나 수채화같은 전형적인 작품을 평가하는 수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너는 좀 더 자유로왔을까?

구상을 하거나, 스케치를 하는 너의 발상이 참 신선하다 느꼈던 기억이 있어.


자화상 뒷 배경으로 넣었던 전자의 움직임, 포스터에 사용했던 색 조합, 크로키로 단숨에 그려냈던 너의 손. 반대로 놀랄만큼 정교했던 신발 스케치...


'내 아들이니까 엄마 눈에 다 잘해 보이는'것이 아니라,

작가는 모른채, 단지 그의 창작물만 보고 느껴지느 감정처럼

너의 음악, 미술의 결과몰들은 참 ‘재미’가 있어.

기법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낯선 느낌이 주는 흥미로움이...


아, 실은 너가 쓰는 글도 그래.

때로는 엄마가 너의 글 속에사 기승전결, 주제, 중심문장 확실히! 마무리는 이렇게! 이런 것들만 보이고, 잔소리같은 간섭만 늘어놓던 때도 있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 다 잊고 그냥 무조건 너의 글을 쭉 읽어 내려가기만 했는데,

엄마가 전혀 생각지 못한 단어의 조합이나, 새롭고 신선했던 표현들이 그제서야 보이는 거야.


왜 진작 이런 것들을 어색하게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고쳐주는 것이 엄마의 책임이라 생각했을까?...

좀 더 일찍 너의 이런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왜 엄마의 굳어버린 시선으로만 평가의 잣대를 대고 말해버렸을까?

후회되고 또 후회되는 마음을 이제야 고백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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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해 지는 마음


근데, J야, 이건 너가 아주 아끼고 자주 꺼내봐야 할 너의 특별함이라고 생각해.


'너는 단지 음악과 미술이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음악, 미술 과목이라 외면하며 살고 있겠지만,

최소한 ‘나는 음악, 미술쪽은 별루야, 싫어해‘ 하는 자신에 대한 편견만은 갖지 않았음 좋겠어.


객관적으로 본 너에게는 음악과 미술에 대한 재미있는 발상들이 있고,

이 발상들이 너의 속에 자주 꿈틀대다 보면 분명 너에게 어떤 영감을 줄 것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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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과학이 너에게 큰 즐거움을 주기도 하겠지만, 지식을 최대한 많이 인풋하는 것만이 공부는 아니란다.

인사이트와 영감을 얻을 수 없다면 지식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해도 아마 넌 무척 답답함을 느끼게 될 거야.


아인슈타인이나 파인만이 음악을 즐기고, 밴드에 열심이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해.

휴대폰을 보면서 기숙사 침대에 몸을 던지고 쉬는 시간도 편안하고 힐링이 되겠지만,

좋아하는 분야가 있다면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동영상도 좋으니 뮤지컬의 한 장면이라도 감상해 보렴.


연필이나 펜도 좋으니 마음에 끌리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색으로 낙서처럼이라도 표현해 보렴.

학교에서 하는 음악, 미술 시간에 편견을 버리고 관심있게 참여해 봐봐.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분명히 있어.

마음이 말랑 말랑해지고 부드러워 지는 느낌.

각 맞춘 평행선은 아니지만, 묘하게 재미있는 각도와 어울림을 만들어 내는 적당한 ‘긴장감’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너의 마음이 분명 더 풍부해 지고, 뭔가 꿈틀대는 그 기분좋은 긴장감을 느껴보길 바래.

그런 것들이 너의 공부와 연구 아이디어를 자극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고!

아마도 네 속에 잠들어 있던 거인이 깨어나는 더 큰 사건이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야.


엄마도 오늘은 새로운 스타일로 소묘 스케치를 시도해 보려고 해.

그동안 너무 딱딱한 책만 읽었더니 머리속도 마음속도 좀 딱딱해져버린 느낌이라...

'새로운 스타일'이라 말해놓고 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그럼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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