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듯 살지 말고, 산 듯 살아내기
‘나는 죽음을 본 적이 있어...’
이것은 깊이 깊이 숨겨진 비밀같은 기억이다.
'죽지 않고 살아냈어' 라는 사실이 내 자신에 대한 가장 큰 위로와 칭찬이 되었을 때, 나는 그 기억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할머니, 나의 할머니
할머니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나는 그것이 죽음임을 알지 못했다. 몇 날 며칠을 눈을 감고 꼼짝없이 숨만 쉬고 계셨지만 나는 언젠가 할머니가 가늘게 눈을 뜨고 손가락을 움직이며 조금씩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칠 것이라 생각했다.
할머니의 큰 손은 여전히 따뜻했으까.
그러던 어느날 나는 죽음을 현실로 느낄 수 밖에 없는 증상을 보고야 말았다.
할머니의 손톱이 초록빛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었다. 나는 떨며 그 손을 잡고 또 잡았고, 따스한 온기를 찾고 찾았다.
점점 뚜렷해 지는 초록빛 손톱과 차가와지는 손과 발이 두려웠지만 나는 여전히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이라 생각 하지 않았다. 체한 듯 꾹꾹 억눌린 며칠을 보내던 어느날 할머니는 감았던 눈을 갑작스럽게도 번쩍, 그것도 아주 크게 떴다. 나는 숨이 멎을 듯 놀라며 할머니가 깨어났다 생각했다. 그렇게도 동그랗고 커다란 할머니의 눈을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분명 무언가를 보는 듯 했고 강렬하게 붙잡는 듯, 열망하는 듯 했다.
순간이었을까? 제법 긴 시간이었을까?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또 갑작스럽게 그 큰 눈이 감겼다.
그 때는 어찌 알았을까?.. 그 순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차라리 살아내라
죽음은 그런 것이었다. 그저 몸과 마음 모두가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것.
밧데리 0%로 꺼져 버리는 것.
꾹꾹 억눌렸던 마음이 폭발하여 엄청난 뭔가가 휘몰아칠 줄 알았지만 그저 공허했고, 한겨울 아린 손등처럼 건조했다.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사라져가던 할머니, 그 슬픈 시간과 마음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초록색 손톱도, 차가와진 손바닥도, 하얗게 굳어버린 몸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희미해져 갔지만,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마지막 눈빛이다.
당신 몸의 모든 생명줄을 다 끌어모으는 듯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강렬하게 빛나던 마지막 눈빛이다. 일제 시대와 6.25 전쟁, 근대화 시기를 살아온 그 시대 여성들이 그렇듯 할머니의 삶도 녹녹치는 않으셨기에 언제나 빨리 죽어야지를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할머니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토록 강한 생명의 힘이라니...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가?
그래서일까? 나는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한 줄기 '의심'의 여지를 남겼다.
나는 정말 죽고 싶은 걸까? 진심 다 내려 놓고, 버리고, 잊고, 잊혀지고 싶은 걸까?
아니면 더욱 강렬하게 붙잡고, 끌어당기고, 기억하며 살고 싶지만, 그러하질 못해 ‘차라리 죽고 싶은 걸까?’
할머니의 눈빛은 그 때마다 나에게 말했다.
‘차라리' 죽고 싶은 것뿐이야. 그러니 죽지 말고 차라리 살아내라고.
생명은 뜨겁다
가끔씩 부정적 생각과 좌절감이 화산폭발 직전의 진동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아 또 그 분이 오시려나 보다. 나를 깊고 어두운 동굴 속으로 끌고가려는 손.
그럴때면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눈빛을 떠올린다. 죽을 힘을 다해 움켜잡으려 했던 그 생명줄을 나는 지금 안전하게 붙잡고 있구나.
할머니,
나 이렇게 살아내었으니, 이제 무엇이든 해 볼수 있는 거지?.....
할머니의 눈빛처럼 그렇게 열망해도 좋을 만큼 내 삶도 값진 거 맞지?....
죽고 싶어 기도했고, 또 살고 싶어 기도했던 나의 혼란스러움을 이제는 솔직히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 앞에서 나는 실은 더 뜨겁게 생명을 원했던 것이다. 그 순간 삶과 죽음이 정반대의 편에서 대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끝을 맞대고 있었던 것이다.